● 질병과 인구 등락 사이클
7만 5천년 전 지구에는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다.
그로 인해 지구의 기후는 크게 떨어지고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면서
인류는 한때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인구는 고작 2천명 정도였다.
하지만 인류는
역경을 이겨냈고,
만년 전부터 정착생활을 하면서
인구를 크게 늘려갈 수 있어서
기원 전후가 되면 세계 인구는
약 2억명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리고 천 년이 지나자
세계 인구는 3억 명 정도로 증가하고
다시 천년이 지나자
세계 인구는 무려 70억명을 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인구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증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짧은 기간만을 놓고 보자면
말이 달라진다.
인구는 다음과 같은 원인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 했기 때문이다.
①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된다 : 인구 급증
② '인구 과밀화'로 점차 내부 모순이 발생 : 인구 정체
③ 질병, 전쟁, 기근이 닥친다 : 인구 급감
④ 인구가 줄어들자, 생활공간이 넓어지면서 여유있게 생활 : 인구 다시 증가
이런 패턴은
동서양 모두 예외가 없었다.
특히 ②번은 필연적으로 ③번을 유발시켰다.
달리 말해, 인구과밀은 늘상 질병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질병이 발생하면,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면서
인류의 문명을 수백년 전의 상태로
단번에 되돌려놓곤 했었다.
그러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내성'을 훈장으로 얻게 되었고
한때 무서웠던 전염병도
시간이 지나면서 한낱 '풍토병'으로 전락하곤 했었다.
하지만 인류 문명들은
교류를 통해 영역을 넓혀갔기 때문에
이런 적응 과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명의 전염병과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 '인구 증가 → 정체 → 감소'라는
'인구 등락 사이클'을
마치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었다.
19세기 초까지도
이런 등락 사이클에
인류는 무조건 순응해야만 할 정도로
나약한 위치에 있었다.
●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면서 얻게된 전염병
① 구석기인들의 건강상태
수렵 채집을 하던 구석기인들은
생각보다 영양상태가 좋았고 또 건강했다.
고기, 과일, 해산물, 곡물 등등
닥치는대로 골고루 섭취했기 때문에
영양실조가 적었고,
비타민이나 미네랄의 결핍으로 인한 질병이 적었다.
영양상태가 좋았다는 것은
신석기인들의 체격과 비교를 해보면 명확해진다.
1만 4,000년 전 구석기인들의 경우
평균신장이 남자는 175cm, 여자는 165cm 정도였다.
그런데 농사가 도입된 이후인
BC 3,000년 경에는
남자는 160cm, 여자는 152cm로
각각 15~13cm 정도 더 줄어들게 된다.
괜히 요즘 구석기 다이어트 식단이
화재가 되고 있는 게 아니다.
▲ 구석기 식단 다이어트
평균 수명에 있어서도 구석기인들은
19세기 초 근대 유럽인들과도 별 차이가 없었다.
구석기인들은 출산시 사망률과
영아 사망률이 무척 높았지만
근대 초기의 유럽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한 예로 18세기 프랑스 아이들 중
1/4이 첫돌이 되기 전에 죽었는데,
구석기인들의 아이들 역시
비슷한 비율로 사망했다.
평균수명은 대략 30~40세 정도였지만,
이 또한 19세 초 유럽인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치다.
구석기 인들도 근대 초기의 유럽인들처럼
전체 인구 중 10% 정도는 60세 이상까지 살았던 것이다.
▲ 인류의 평균수명 : 네안데르탈인 30세, 신석기인 38세, 중세시대 38세, 19세기 중엽 40세
거의 변화가 없었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최근 150년부터의 일이다.
즉, 인류는 정착생활을 하고
문명을 고도로 발달시켜왔지만
그렇다고 건강상태가 더 나아지고,
평균수명이 더 올라갔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② 가축을 기르면서 얻게된 질병
농경을 시작하고,
정착 사회를 형성하면서
인간은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질병을 겪어야만 했다.
새로운 질병의 주범은
대부분 가축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소 : 천연두, 결핵, 디프테리아
개 : 홍역, 우역
돼지 : 인플루엔자
말 : 감기
물소 : 나병
닭 : 인플루엔자
여기에 인간은
개와는 65종, 소와는 55종,
양과 염소와는 46종, 돼지와는 42종이나 되는
질병을 공유하게 되었다.
반면에 가축이 없었던 아메리카에서는
좀처럼 동물로부터 인간에게 옮는 질병이 없었다.
③ 농경생활을 하면서 얻게된 질병
인간은 농업을 시작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질병을 얻게 된다.
특히 관개 시설의 발달로 인해
디스토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디스토마는 발육과정을 통해
숙주를 바꿔타는 대표적인 기생충인데,
유충시절에는
가재나 물달팽이를 중간숙주로 하여 살아가고
성충이 되면 인간의 몸으로 침투하여
폐나 간으로 파고들어가 살게된다.
그러데 관개용 수로는
달팽이에게 아주 좋은 서식지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거기서 일하는 인간도
감염에 쉽게 노출되었던 것이다.
이런 디스토마는,
관개 시설에 의존해 살던
메소포토미아나
이집트 문명 시절부터 있었고
오늘날에도 수 천만 명이
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한편 서아프리카에서는
숲을 벌목하고 화전 농업을 하게되자,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모기의 서식지를 넓혀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인도에서는 농경지대가
인더스 강에서 갠지스 강으로 퍼져감에 따라
높은 기온과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새로운 질병, 특히 말라리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중국에서도
인도와 양상은 비슷했다.
황하에서 양쯔강으로
농경 지대가 퍼져감에 따라
역시 높은 기온과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말라리아, 디스토마, 뎅기열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인간의 분뇨를 비료로 쓰는
시비법이 발달하게 되는데,
시비법으로 인해
토지의 단위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하여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생충'이라는 대가를 치뤄야했다.
20세기 초 90%의 중국 주민들이
기생충에 감염되게 되었고
1948년 전체 사망률의 1/4 정도가
인분을 통해 옮는 감염에 의한 것이었다.
● 인간이 다른 문명과 교류를 하면서 얻게된 전염병
① 천연두
문명 간에 교류가 시작되면
우리는 흔히 긍정적인 효과만 생각하게 된다.
"중국은 이슬람을 통해
과학과 기술을 배우게 됐고,"
"이슬람은 중국을 통해
화약, 나침반, 종이를 배우게 됐지."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엄청난 재앙을 생각하면
낯선 문명과의 교류가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서기 165년 로마제국은 지중해 무역을 통해
인도와 교역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 인도 상인을 통해 천연두가 로마제국에 퍼져
제국 인구의 1/4가량이 죽게 된다.
당시 천연두가 지중해 지역에 발생한 것은
사상 처음이었기 때문에
매우 강력했고
또 사망률도 매우 높았던 것이다.
중국도 310~312년 경에
인도를 통해 천연두가 수입되게 된다.
중국 역시 천연두로
전체 인구의 1/4이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천연두는 중국을 통해
곧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도 전파되게 된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중국에서 천연두가 대대적으로 발병되었을 당시에
한반도로 이주해온
유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동시에
한반도에도 퍼지지 않았나 싶다.
이런 천연두는 백제를 통해
7세기 중엽 일본에도 전파되게 된다.
그런데 섬으로 고립된 일본의 경우
천연두의 면역력이 더더욱 부족했다.
7세기 중엽 백제 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반도(충청도 백강)로 파견된 군인들이
패퇴하여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이때 천연두 균에 옮아와서
교토 인구의 절반이 사멸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8세기에는
일본 전국적으로 천연두가 창궐하여
일본 전역에 민심이 흉흉해지는데
크게 일조를 하게된다.
② 나병
이것도 시초는
인도다.
나병은 인도와 동남아에서
인간이 물소를 가축으로 기르면서 얻게된 질병으로,
6세기 경부터
유럽으로 퍼지게 되어
13세기까지 나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시설이
유럽 전역에 1만 9천개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14세기 이후 나병은
돌연 유럽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③ 흑사병(선 페스트)
선 페스트(진짜 페스트) 역시
인도에서 발생한 질병이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사람에 옮겨붙어 피를 빨게되면
쥐의 패스트균이
사람에게로 옮겨와
먼저 임파선이 붓고,
다음으로 온몸이 붓고 열이 나고,
구토와 혼수 상태에 빠지다가
3,4일 이내에 죽게된다.
사망률이 엄청나서,
사람에게 직접 감염된 경우 치사율은 100%이고
간접적으로 감염되었다고 해도
치사율은 90%나 되는 무서운 질병이다.
심지어 20세기 들어 항생제가 발명된 후에도
감염된 사람들의 2/3가 죽게되는 병이다.
그런데 이런 페스트는
흔히 중세시대에 혜성같이 나타난
흑사병으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선 페스트는 6~7세기 경에
유라시아 대륙을 먼저 한바탕 쓸고 갔던 전염병이었다.
그러다가 13세기경
몽골제국이 등장하고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동서교류가 활발해지자
선 페스트균 전도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문명 교류의 이면에는 늘 질병이 있었다.)
또 중세시대 유럽에만
발생한 병으로 알고 있지만
같은 시기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발병했던 병이다.
(다만 당시 우리나라의 피해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미비하다.)
어쨌든 흑사병으로
유럽에서는
3년 만에 유럽전체 인구의
1/3이 증발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아일랜드의 수도사 존 클라인의 회고다.
존 클라인
"페스트가 발병하면 도시의 주민들을 모두 앗아갔고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존 클라인
"전염병은 감염력이 매우 강해, 걸린 사람은 100% 사망했고
죽은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얄짤 없었다."
존 클라인
"많은 사람들이 다리나 겨드랑이에
종기, 농양, 농포 같은 것이 생기면서 죽었다."
존 클라인
"격렬한 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피를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나 사망률이 높았던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벽에 오줌을 싸는 개조차 남아있지 않다."
④ 신대륙의 비극 : 구대륙의 온갖 질병을 순식간에 얻어맞다.
아메리카 대륙은
15세기 말 유럽의 정복이 있기 전까지
질병과는
거의 무관한 대륙이었다.
다만 인구가 밀집된
불결한 도시지역에는
기생충과 이질과 같은
질병은 있었다.
하지만 가축으로 인해 생긴
질병은 전혀 없었다.
신대륙에는 라마 외에는
가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구대륙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반면에 스페인 정복자들은
갖가지 구대륙의 질병을
신대륙으로 가지고 왔다.
최초의 일격은 천연두였다.
1518년 서인도 히스파니올라섬,
1520년 아즈텍, 1525~1526년에 잉카제국으로 번졌다.
병이 퍼져가는 곳마다
면역력이 없는 주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갔다.
천연두에 이어
홍역이 1530~1531년 발생했으며
티푸스는 1546년,
인플루엔자는 1558~1559년에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천연두로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설상가상의 재앙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인구가 줄었던 것일까?
스페인 정복 직전 당시
신대륙은 인구가 2500만명으로
전세계에서 중국, 인도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던 곳이다.
그런데 16세기 중반에는 600만명,
1600년에는 100만명 가량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인구 격감은
한때 번성했던 신대륙 문화를 급속도로 파괴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에 의한 전염병만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또 다른 질병이 있었고
이번엔 백인들에게도 재앙이었다.
바로 아프리카 노예들이 가지고 온
풍토병이 그것이다.
16세기말~17세기초 말라리아,
1648년에 황열병은
아프리카 노예들에 의해
신대륙으로 전파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풍토병으로
열대지역 원주민은 물론
그곳에 정착하려고 한
유럽인들의 목숨까지도 앗아가게 된다.
오늘날 열대 지방의 라틴 아메리카에
흑인들이 많은 대신,
백인들이 적은 것은
모두가 이런 역사 때문이다.
⑤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퍼졌던 질병, 매독
유럽과 신대륙 사이의 질병 전래가
무조건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5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최초로 매독이 발병하게 되는데,
사실 매독은
신대륙의 풍토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매독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다음 해인
1493년에 유럽의 바르셀로나에서 최초로 발병되더니
급속도로 구대륙 전체로 퍼지게 된 것이다.
● 인간이 도시생활을 하면서 얻게된 질병
① 인간들끼리 모여 살면서 얻게된 질병
정착 사회가 생겨남에 따라
인간은 단지
서로 모여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종류의 전염병에 시달리게 된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자연히 정착촌의 인구 밀도도 증가했는데,
이에 따라
인간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염되는
홍역, 이하선염, 천연두 같은
전염병이 발병하게 된 것이다.
이들 전염병의 병원균은 살아남으려면
일정 수 이상의 인간 집단이 있어야 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홍역은 인구 50만명 미만인 섬에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
인류는 과다하게 모여 살면서
스스로 여러 전염병을 자초하게 된 것이었다.
② 콜레라
사실 인류 문명이,
마시는 물과 똥물을
정확히 나눈 역사는
불과 1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전의 전통사회에서는
식수와 똥물은 모두 하나의 물줄기에서 이뤄졌다.
상류지역의 똥물은
중류, 하류 지역 사람들에게는 곧 식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분뇨는
물과 만나면
콜레라와 이질 같은
병균이 살기 좋은 서식 환경이 되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도 콜레라는
19세기 초까지
인도의 벵골지방에만 있었던
풍토병이었다.
그런데 영국 군대가
이 병을 인도 전역으로 옮기게 되고, (1817년)
이후 빠르게 콜레라균이 퍼져서
1820년 유럽에 등장하더니,
1830년대에는
신대륙에 상륙하게 된다.
19세기 후반에는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여
당시 한양 인구의 3%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양호한 편이었다.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는 1831년 한해 동안
도시의 31%가 이 병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콜레라는 19세기 후반
정수시설이 개발되기 전까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똥물과 식수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던 탓에
쉽사리 극복할 수 없었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당시 세계의 도시들이
얼마나 더러웠냐면?
만약 오늘날 현대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150년 전 전세계 아무 도시나
랜덤으로 여행하게 떠나게 된다면,
확률 90% 이상으로
이런 느낌을 받게될 것이다.
"뭐야? 이런 썩은 시궁창 냄새는.."
그랬다. 19세기 중반까지,
전세계 도시의 악취는
전적으로 쓰레기와 인간과 동물의 분뇨를
하천에 아무렇게나 버리면서 썩어가는 냄새였다.
③ 티푸스
티푸스는 1490년 지중해의 키프로스 섬에서
스페인 군대가 옮겨왔다.
이(머릿니)가
티푸스를 확산시키는데,
병원체를 가진 이가 배설한 부위의 피부를
가렵다고 긁으면 감염이 되는 것이다.
감염이 되면 몸 안으로 독소가 증식되고
곧바로 두통이 생기고 고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온 몸에 발진이 생기고
쇼크 상태에 빠져
호흡곤란을 일으키다
혼수상태에서 사망하는 병이다.
다른 전염병처럼
대규모로 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특히 사람들이 밀집하고, 불결한 장소에는
높은 확률로 티푸스가 창궐했다.
감옥과 선박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 몰려 있는 곳,
옷을 거의 갈아입을 수 없으며
불결한 짚이나
담요를 덮고 자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 병이 발생했다.
그런데
꼭 그런 장소가 있었다.
어디일까?
바로 군대다.
군대에서는 항상
사람들이 밀집해서 지냈고,
위생상태도 개판이었기 때문에
티푸스는 주로 군인들에게서 발병했다.
군인들이 머리를 스포츠로 짧게 깎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20세기가 될 때까지도
군대는 적과의 싸움에서 사망하는 수보다
병으로 죽는 수가
더 많았다.
한 예로 1845~1846년 크림전쟁에서
영국군은
싸우다 죽는 숫자보다
티푸스로 죽은 병사 수가 10배는 더 많았다.
비슷한 상황이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벌어졌고
보어전쟁에서도
보어인들은
자신들이 죽인 영국 병사보다
5배나 더 많이 티푸스로 죽었다.
1904 ~1905년 러일전쟁에 와서야
일본군의 적극적인 위생 대책으로
티푸스로인한 사망자 수가
전사자 수의 1/4 수준으로 떨어졌을 정도다.
● 도시생활은 곧 불결함 : 19세기 초 유럽의 상황
빈곤과 불결, 그리고 무식함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19세기 초까지 유럽의 거리는
쓰레기와 진흙과 똥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우물이나 개천에서
더러운 물을 길어와서 생활 용수로 사용했다.
영국의 한 탄광 노동자는
조사관에게 말했다.
광부
"우리들의 몸은
당신의 모자 색깔처럼 새까맣습니다."
광부
"광부의 딸들은 몸을 씻는 일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광부
"우리 딸은 태어나서
한 번도 씻은 적이 없는걸요."
당시 유럽의 도시의 사람들은
불결한 위생 때문에 계속 질병으로 죽어갔지만
같은 속도로
시골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파출부, 광부, 노동자, 매춘부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들도
대부분 도시의 병에 걸려 죽게되었다.
한 영국인 작가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거리에서 본 장면이다.
토바이어스 스몰렛
"이곳의 우유는
뚜껑도 덮지 않은 채 운반되고 있어서,"
토바이어스 스몰렛
"창문을 통해 내버리는 더러운 분뇨와
보행자들의 침이나 콧물, 씹는 담배,"
토바이어스 스몰렛
"오물 운반차에서 흘러내린 쓰레기,
마차바퀴에서 튀어 오른 진흙덩어리,"
토바이어스 스몰렛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재미삼아 던지는
흙과 쓰레기 같은 것이 언제 들어갈지 모르고.."
토바이어스 스몰렛
"우유의 양을 재는 깡통 컵은
아기가 토한 것이 들어 있는 채,"
토바이어스 스몰렛
"그대로 우유 속에 넣었다가 퍼 담아서
다음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바이어스 스몰렛
"그리고 그 우유의 찌꺼기를 구해다 파는
우유팔이 소녀의 우유에는,"
토바이어스 스몰렛
"넝마 같은 옷에서
빈대나 이 등의 해충이 떨어지고 있었다."
당시 도시의 의사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의사들은
어떻게 질병들이 옮기는지 몰랐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었다.
때문에 효과있는 약이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 19세기 런던 슬럼가
19세기 초 유럽에서는
한쌍의 부부가 결혼을 하여 10명의 아이를 출생하면
그 중 21세를 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대략 3명뿐이었다.
● 늘어나는 인류 평균수명 : 평균수명이 늘어난 진짜 이유는?
인간이 정착 사회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
질병의 장난으로 인한 주기적인 인구등락 사이클은
마침내 최근 150년 동안에는
전혀 일어나지 않게된다.
15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약 1/3 정도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포함, 선진국 사람들은
20명 중 1명만이
성인이 되기 전에 죽는데
그것도 불치병이나 유전병,
사고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균수명은 19세기 중반까지
40세를 넘지 못했지만
현재는 선진국의 경우 80세에 근접하고 있다.
후진국의 경우라도 보통 60세 정도는 산다.
이렇게 인간의 수명이 빠른 시간 내에
폭증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전염병을
퇴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전염병이 퇴치되었단 말인가?
누구든지 쉽게,
의학의 발달을 꼽고자 할 것이다.
이 시기 백신의 개발은
전염병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천연두에 대한 접종은
11세기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고
1721년 영국에서 최초로 종두법이 발명되면서
혁신적으로 그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음이다.
하지만 천연두 접종의 실시로
천연두에 의한 사망률은 줄어들었지만
이로 인해 사망률이 감소된 것은
겨우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클라이브 폰팅 著, 녹색세계사 p.371)
다른 질병에 대한 백신 개발은
19세기 후반에야 이뤄졌다.
예를 들면 콜레라, 장티푸스, 데프테리아 백신이
개발된 것은 1890년의 일이다.
반면에 결핵은 1920년대까지
제대로된 백신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효과적인 치료약이 등장한 것은
1947년 스트렙토마이신이 개발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결핵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료제가 없었음에도
20세기 초반 결핵 발병은
1세기 전보다
1/8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학자들에 의하면,
의학의 발달이 결핵을 치료하는데 공헌한 성과는
전체 사망자의
3% 정도를 줄여 주는데 그쳤다고 한다.
(클라이브 폰팅 著, 녹색세계사 p.372)
마찬가지로 1930년대 후반 개발되는
설파제와 항생제 역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줄이는데
생각보다 커다란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20세기 이후로 나타나는 의학의 발달이
사망률 감소에 미친 영향은
3.5%에 불과하다고 한다.
(클라이브 폰팅 著, 녹색세계사 p.372)
읭??
좀 이상하지 않는가?
현대인들의 평균수명 증가가
의학의 발달로 나타난게 아니었다니..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전염병을 감소시킨 가장 큰 요인은
영양과 환경의 개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영양 상태만 좋아도
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다.
19세기 중엽 이후 유럽인들은
영양적으로 풍족해졌고,
그러자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현상이
바로 유아사망률의
대폭적인 감소였다.
공중 보건 대책 또한
전염병의 억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수구를 정비하고
마시는 물을 관리한 결과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질병이 크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19세기 사망률의 감소분 중
1/5가량이 물공급과 하수구 개선덕인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주택 개선도 빠질 수 없다.
주택 개선으로
외부와의 차단이 더욱 확실해졌고
습기 차고 환기가 잘 안되는 주택들이
점점 사라지게 된 것도
질병의 감염을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질병을 감소시킨 것은
환경적인 이유였고,
의학의 진보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핵의 경우 공중 보건과 생활 환경의 개선,
감연 환자를 격리시킬 수 있는 요양원의 설치,
거리에 침 뱉는 행위의 금지,
감염된 소 도축 금지 등이 결합되어
치료약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크게 감소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 문헌 :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인류이야기 (제임스 데이비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