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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식인제국' 아즈텍 인신공양 : 왜 그들은 인육을 먹었나?

출처 레알뻘짓 블로그 | 만쭈리
원문 http://blog.naver.com/alsn76/40211330752
● 스페인인들이 목격한 끔찍한 의식

1519년 아즈텍 제국(멕시코)에 도착한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은

평소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이골이 난 인간 도살꾼들이었고

그들의 모국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잔인하기 소문난 동네였다.

당시 스페인은 툭하면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등으로

끔찍한 살인 퍼포먼스를 
자행하고 있었으니

고문대 위에서 
사람의 뼈를 부러뜨려 죽이는가 하면

사람의 사지를 하나씩 말에 묶어
4등분하여 죽이는 거열형이 횡행했고

마녀로 몰린 여자들은
산채로 불태워 처형됐다.

그런 퍼포먼스들은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경종의 메시지인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는 좋은 구경거리이기도 했었다.

따라서 아즈텍을 정복하겠다고 온
코르테스의 군사들은

웬만한 잔인함에는 꿈쩍도 하지않을
냉혈한인 동시에 강심장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코르테스 일행도
아즈텍의 잔인한 광경에는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사연은 이랬다.


아즈텍의 마지막 황제인 목테수마(몬테수마 2세)는 
스페인 사람들을 환영했고 

국가의 성대한 축제에 
기꺼이 그들을 초대했다.

 목테수마 
"너희들도 축제에 와서 구경들 하라능. 
오면, 맛있는 것도 얻어먹을 수 있어."

 코르테스
"..."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망설였다.
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황제의 부탁이니 
축제의 현장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황제가 데리고 간 곳은 
오늘날 멕시코시티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가장 높은 피라미드였다.

꼭대기까지는 무려 
114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신전 위에 올라가자 스페인 사람들은
곧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된다.

정상에 올라서니
사방에서 여러 피라미드가 보였는데

피라미드 정상마다 제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들을 눕혀놓고는 무엇인가를 한참 하고 있었다.
▲ 영화 '아포칼립토'의 장면

스페인 사람들이 당도한 정상에도
돌로 만든 제단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유혈자국이 선명했다.

 코르테스
'아! 혹시 이곳에서 
무언가를 죽인 것인가?'

그렇게 어리벙벙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피라미드 밑을 쳐다보니

포로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포로들은 올라오기 싫은 듯,
대부분이 머리채를 잡혀가며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어떤 포로들은 계단을 오르다 
혼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포로 일행이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오자

목테수마 황제는 곧
포로들의 처단을 명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제사장들은 
흑요석으로 만든 칼로

포로들의 가슴 부분에서 
심장을 하나씩 도려냈다.

 코르테스 
'뜨악!!'

도려낸 심장을 황제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는

곧 제단 옆에 있는 
화로에 던져 태웠다.

악취가 고약해서
속이 매스꺼웠다.

 목테수마
"포로들의 심장은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능."

 코르테스
"..."

그러더니 심장이 적출된 몸뚱이를
피라미드의 가파른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뜨렸다.

그리고 2분마다 
포로들은 하나씩 제단 위로 올라가

거의 기계적으로 
칼질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식으로 수 시간 동안 
인신공양 의식은 지속되었고

마지막에는 
잘생긴 청년과 처녀가 올라왔다.

그동안 제단 위로 올라온 포로들은
전부 남자였는데

이번에는 여자까지 올라온 것이다.
사실 이 둘은 포로가 아니었다.

두 남녀는 아즈텍의 노예로서
'엔딩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그간 1년 동안 특별 관리 받으면서
피둥피둥하게 살을 찌운, 

황제의 보물이었던 것이다.
(즉 황제 전용 고기였다.)

moon_and_james-13

그렇게 수 시간 동안의 
의식이 끝나자

스페인 사람들은
겨우 피라미드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와 살펴보니, 광장 한편에는
해골과 턱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다른 곳에는 이빨, 손발톱, 눈알 등을
한데 전시한 곳도 있었다.

그리고 이날 
스페인 사람들의 목격담은

아즈텍인들이 직접 그린 
돌 위에 새겨진 무시무시한 그림들을 통해서

한치의 의심도 없는 사실이었음을 
오늘날 증명해 주고 있다.


● 신대륙 전체가 인신공양을 하고 있었다.

인신공양(사람의 몸을 바치는)은 
아즈텍에서만 행해졌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아즈텍보다 수세기 이전에 살았던
마야족도 같은 목적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 마야 피라미드

오늘날 중앙아메리카에서 발견되고 있는
다른 여러 부족들이 만들었던 피라미드들 역시

모두 인신공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또 그 기원을 추적해보면
중앙아메리카에서 국가가 출현했던 시기보다

훨씬 앞선 때부터 
인신공양은 횡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마존, 카리브해,
미국의 대초원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의 장소에서
이러한 인신공양(+식인)이 행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즈텍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던 인신공양은

실은 수렵·채집민 시대 때부터 
발생해서 계승되어 온 

아메리카 대륙의 
고유한 유산이었던 것이다.
(잉카제국에만 없었다.)

사람의 심장을 떼어내는 것도
다른 곳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북미의 이로쿼이족은 
포로의 심장을 먹기 위해 서로 다퉜고,

"용감한 자의 심장을 먹으면
내가 더욱 용감해 질 수 있걸랑."

이들 역시 포로의 인육을 먹기에 앞서
요란한 '퍼포먼스'을 자행했으니

몸의 일부를 불로 지지고
팔다리를 자르고, 

뼈를 부수는 식으로
포로를 고문하고 즐거워 했고


▲ 인디언의 카니발리즘을 소재로한 MV

때로는 말뚝에다 묶어놓고 
몽둥이를 하나 쥐여주고

고문을 가하는 자와 싸워보라며 
일기토를 붙이기도 했다.

 
"아니, 말뚝에 묶어놓고 싸워보라니?"

"그러니깐 골탕 먹이는 거지."

혹은 살을 찌우기 위해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심지어 여자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헐!"

그런 뒤 포로를 죽이고 심장을 도려낸 다음
인육 파티를 행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아마존 정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법은 놀랍게도 흡사하다.

16세기 초 브라질 해안에서 난파당한
독일인 선원 한스 슈테덴의 목격담은 이렇다.

투피남바족이 
포로를 잡아왔다.

포로들은 밧줄로 묶여서 
광장으로 끌려나왔는데

마을 사람들은 포로들을 보자
마구 물건 따위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묶인 상태에서 
포로에게 몽둥이를 하나 쥐여줬다.

그리고 나더니 사람들은 저마다 곤봉을 하나씩 쥐고
노래를 부르며 포로에게 집단 매질을 가했다.

축제는 보통 포로의 머리통이 박살나면 
그것으로 끝이났다.

피와 창자는 정성스레 그릇에 담고
고기는 토막을 내어 바비큐로 구웠고

고기를 굽는 노인은
석쇠 구실을 하는 막대기에서

뚝뚝 떨어지는 기름 한방울 까지도
놓칠세라 아낌없이 핥아먹고 있었다.


● 포로를 잔인하게 죽였던 이유

18세기 캐나다의 휴런족에게도
유사한 퍼포먼스가 선교사들에 의해 목격됐다.

희생 당하는 자는 
온타리오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잡힌 
이로쿼이족 청년들이었다.

 
"어? 이로쿼이족도 식인종이잖아."

"뭐, 당시는 포로가 되면 
어느 쪽이든 잡아먹혔으니깐."

이들 역시 
곱게 죽이지는 않았고

다리를 불태우고
손뼈를 부러뜨리고, 귀를 찢는 등

잔혹한 오락 행위(?)를 거친 뒤에야 
희생을 시켰는데

죽일 때도 
재차 끔찍한 퍼포먼스가 이뤄졌으니,

벌겋게 달아오른 인두로 
눈을 지지고

목구멍에서 직장까지 내리 쑤시는 등
최후까지 잔인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잔인하단 말이가?

사실 당시 인디언들이
포로들을 고문을 가했던 일차적인 목적은

뭐니뭐니해도 
구경거리 겸 오락거리에 있었다.

 
"인간의 성품은 본시
선(善)하다고 하지 않았나?"

 
"도대체 왜 끔찍한 걸 
즐기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안됨."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들은 그런 잔인한 장면도 꽤나 즐겼어."

"읭?"

"알다시피 로마시대에 
경기장에서 맹수 vs 사람이 싸울 때면.."

"관객들은 사람이 이길 때보다는
사람이 져서 맹수에게 뜯어먹히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지."


"우엑!"

중세시대 유럽과 조선시대의
공개처형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은 죄수의 비명을 듣고는
끔찍해했지만

그러면서도 한시라도 놓칠세라 
넋을 잃고 주시하곤 했다.

어쩌면 이런 것도 
인간의 본능일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공개처형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기기 보다는 몹시 불쾌해 하고 몸서리를 친다.
 

다시말해 인간은 
남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즐기는게 아니라,

그런 것을 보고, 재밌는 구경거리라고
학습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게 보다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북미의 인디언들에게는
살육을 즐겨야만 하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특히 전쟁터에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더더욱 그러했다.

"싸워서 이기면, 적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지면 그땐 너희가 잡아먹히는 거임."

이런 실감나는 
생존의 법칙 때문이라도

인디언들은 자신들을 한층 더 잔혹한 무사로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됐던 것이다.


● 살인 공장, 아즈텍 제국

사람들이 포로의 고통을 보고
즐거워하도록 학습을 받듯이

사람의 고기를 맛있는 음식이라고 
교육을 받게 된다면  

인육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리고 맛있는 인육은
전쟁의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었다.

다만 북미의 인디언이나
브라질, 카리브의 인디오와는 달리

아즈텍은 인구 500만명의 
거대한 국가 체제였으므로

이들의 군대는 여타 인디언 부족과 비교해
몇 천배는 더 컸다.
 

때문에 단 한번의 전투에서
수 천명의 포로를 사로잡는 일도 빈번했다.

기록에 의하면 
1487년은 특히 더 대단했다.

아즈텍의 황제는 
자신의 생일날에 맞춰

거대한 인신공양 + 식인 파티를 
베풀고자 했었고
▲ 끌려온 포로들

이때 희생된 포로들의 수는
총 14,000명으로

4열로 줄지어 
그 길이만 3.2km에 달했고

모두 다 해치우는 데만
꼬박 4일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 행사 규모에 대한 추산은 
30년 뒤 스페인 사람들의 기록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광장에는 ↓요렇게 생긴 막대 기둥들이 
90cm 간격으로 세워졌는데,"


 
"해골이 모두 얼마일까? 
그 수를 헤아려보니.."

"무려 13만 6천개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희생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것일까?


바로 멕시코 고원 인근, 
저지대에 살고 있던 

밀림 속 부족들의 거주지가 
그 공급처였다.
▲ 아즈텍 제국의 영역

다만 아즈텍 사람들에게 
저지대 부족들은 

마치 자신들의 
가축과도 같았기 때문에

일정 수의 개체수는 유지할 수 있게끔
여자들은 가급적 해치지 않았다.
▲ 아즈텍 귀족들

또 전쟁을 할 때도 저지대 주민들은 
가급적 생포를 해야했기 때문에

행여 적의 병사를 
죽게 되지나 않을까

군사적 우세를 믿고 
강압적으로 밀고나가는 것을 

삼가하는게
몸에 배게 되었다.
▲ 저지대 주민들을 생포한 아즈텍 전사들

하지만 이런 전술 때문에 
코르테스 군대와의 교전 때

아즈텍인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아즈텍 병사1 
"와! 쟤들 뭐야?
왜 이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죽자사자 싸우는거지?"

 아즈텍 병사2
"맞아. 저렇게 전투하는 애들은 처음 봄.
마치 정신병자들 같애."


● 식인의 이유 : 인구조절 때문일까?

지금으로부터 12,000년 전 인류는
베링해를 거너 북미 대륙에 발을 내딛게 됐다.

만약 이때 100명 정도가 
베링해를 건넜다면..

연간 인구증가율이 
1.4%였다고 가정을 해도

800년만에 신대륙의 인구는 
도합 1억명이 된다.

땅과 적당한 기후만 갖추면
언제든 인구는 성장하게 되는게 자연의 이치다.

물론 전통시대 인구라는 것이 
이렇게 성장 일변도로 가기는 힘들다.

자연재해와 전쟁, 질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면 
15세기 후반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때

신대륙 전체의 인구는 
약 3천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비록 구대륙에서 온 질병으로
신대륙의 인구는 

불과 1세기만에 100만명으로
급락하게 되지만,

어쨌든 이전에 많은 인구가 살았던 것은
유럽인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제임스 쿡은 
한 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쿡 선장
"아즈텍인들이 식인을 즐겼던 것은
암만 봐도,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서였음."

그는 아즈텍인들의 인간 사냥으로
당시 메소아메리카(중앙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사망률이 

25% 더 높아졌다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기도 했었다.

 쿡 선장
"옥수수의 생산력에 
절대 의존하고 있던 메소아메리카는," 

 쿡 선장
"당시 인구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었기 때문에.."

 쿡 선장
"아즈텍인들은 그토록
인간사냥에 나섰던 것임."

하지만 
그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

"어떤 모순?"

"그가 계산한건 인간사냥으로 희생됐던
남자 사망자들의 수였지."

"아즈텍인들이 정말로 
인구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사냥을 했다면,"

"인구억제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여자들은 왜 굳이 죽이지 않았겠어?"

"아!"


● 식인의 목적 : 단백질원

피라미드에서 굴러 떨어뜨린 시체들은 
이후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희생자들의 몸뚱이는

모두 
아즈텍인들이 먹어치웠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증언은 이렇다.

"시체를 피라미드 계단에서 
아래로 굴러떨어뜨리면.."

"그 시체는 광장에 이르러 멈춘다."

"물론 잘 굴러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질질 끌어 내린다."

"아무튼 광장에는 시체를 기다리고 있는
몸뚱이의 주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백정을 시켜서
시체를 가르고 먹기좋게 토막 내도록 했다."

"시체에서 머리는 
잘라서 버리는데.."

"이때 잘라진 머리는 꼬챙이에 꽂아 
줄줄이 꿰어 막대기에 매달았다."

다른 스페인 사람의 
서술도 비슷하다.

"의식이 끝나면 
고기를 집으로 가지고와,"

"사람들은 춤을 추고 고기를 나누어 먹는 등
커다란 잔치를 벌였다."


특이한 점은 각 포로마다 
해당 주인이 있어서

굴러 떨어진 포로의 몸뚱이는
반드시 그 주인에게 소유권이 있었다는 점이다.

즉 포로의 주인은
고기를 받는 대가로

아즈텍 정부의 제사장들에게
심장을 납부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메카니즘 때문에
주인들은 의식이 치뤄지기 전까지

포로들이 행여나 살이 빠지지나 않을까
평소 넉넉히 옥수수 빵을 제공했다.

심지어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의 잔칫날에 포로들을 데리고 와서

잘 먹여 살을 찌우게 하면서 
잡아두고 기르기도 했었다.

"뭐야? 
완전 가축이랑 다를 바 없잖아?"

"맞아. 솔직히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이었지."

그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고기를 얻기 위해, 인간사냥을 했었던 것이다.

이들은 
특별 요리법까지 있었으니,

후춧가루, 토마토로 양념을 하여
호박과 함께 스튜로 만들어 먹는 것이

당시 가장 일반적인 
요리법이었다.

다만 이러한 인육은
대부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고.

가난한 시민들은
광장에서 구경을 하다가

머리가 잘려지면
앞다퉈 머리에서 

뇌수를 떼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 식인의 이유 : 정권 안정

아즈텍인들이 인육을 먹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병사를 모집하고

또 이들에게 원정을 위한
전쟁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그리고 획득한 포로들을
황제는 적절하게 분배를 해줘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아즈텍 제국의 
인구는 500만명이었는데

저지대 인구는 탈탈 털어봐야
그보다 적었다.

대체 어떤 수로 
이들을 부양할 수 있단 말인가?

툰트라 지역의 
순록 유목민의 예로 들면

수록의 재생산율을 감안하면
인구 1인을 부양하기 위해

필요한 순록의 수는 
총 100마리 정도다.

만약 한 가족이 20명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면
무려 2천 마리의 순록이 필요한 것이다.

"대신 아즈텍인들은 농사도 짓기 때문에
가끔씩만 단백질이 필요하잖아."

"물론 그래."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순록보다 훨씬 길지.
재생산율은 순록보다 훨씬 낮아."

"그래서?"

"아무리 봐도, 저지대 부족을
인간사냥 하는 것만으로는 고기가 부족해."

실제로 아즈텍에서 1년간 소비했던 포로의 수는 
약 1만 5천명 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1년에 평균 50~60kg의 육류를 섭취하는데,"

"아즈텍인들은 1년에 
평균 160g 밖에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는 얘기임."


"개와 칠면조, 도마뱀도 먹었다던데?"

"그건 양이 많지 않았어."

"때문에 그것으로만 
단백질과 지방 섭취량을 개선시킬 수는 없었어."

"아!"

"하지만 방법이 있었어."

"뭔데?"

"고기를 차등 지급하는 거였음."

"읭?"

"아즈텍 황제는 
귀족과 군인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지급을 했고.."

"또 농업생산이 부진한 흉년기에 맞춰서
주로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보상으로 
정치적 불안을 타개할 수 있었거든."

"아! 결국 인육은 
정권 안정을 위한 방편이었네."

"그런데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일반 평민들은.." 

"대체 어디서
단백질을 해결했지?"

"아즈텍인들이 재배했던 콩, 옥수수를 통해
어느 정도 필수 아미노산을 채울 수 있었고.."

"벌레, 물고기 같은 것도 
잡아 먹었지."


"아!"

"그래도 늘 부족해서
스페인 사람들은 당시 아즈텍인들을,"

"전세계에서 가장 적게 먹는 민족이라고 
평가 하기도 했었음."


● 다른 세계에도 인신공양은 있었다.

사실 인신공양은 
신대륙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대륙에서도 
빈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구전설화지만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
인당수 물에 다이빙을 했던 심청이 얘기도

실은 인신공양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보
면 이렇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전쟁 당시 
트로이의 포로 12명을 산 채로 불태워 죽였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있었던 
BC 480년에도 그리스인들은 

승리를 다짐하기 위해 
페르시아인 포로 3명을 희생물로 죽였다.

그런가하면, 로마인들은 BC 226년
켈트족 2명과 그리스인 2명을 생매장 시켰다.

로마에서 비슷한 사건은 
그 후로도 종종 일어났다.

유럽 역사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켈트족의 얘기가 유명하다.

이들은 엄동설한에도 
벌거벗은 몸으로 나타나

무시무시한 괴성을 지르며 
로마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존재들이다.

"헐, 쟤들 왜 저럼?"

게다가 켈트족들은 
전쟁 포로의 목을 잘라

이륜전차에 싣고 다니며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아예 집 내부에 
인테리어 목적으로

두개골을 벽감으로 
새겨넣거나 진열하기도 했다.

고대 켈트족의 성채나 보루, 
마을로 들어가는 문에는

으레 해골을 
장식물로 내걸기도 했었다.

▲ 서양에서는 여전히 켈트족의 해골이 유명하다.

이런 모습들은, 켈트족 역시 희생자들을 바치는 종교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일 때는
바구니에 통째로 넣어 불태워 죽이곤 했다.

또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어

부글부글 끓는 창자의 모양을 가지고 
장차 앞날을 점치곤 했었다.


이런 인신공양은 중국의 
은나라(상나라)에서도 유명하다.

노예와 강족 포로를 잡으면
신에 바칠 제물 용도로 

목베기, 허리 자르기, 때려 죽이기
사지를 찢어죽이기, 삶아 죽이기,

태워죽이기, 말려 죽이기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살해했던 것이다.

또 집을 지을 때면
건물이 쓰러지지 말라는 주술적인 의미로

포로의 머리를 잘라낸 몸통만을 따로
건물 기둥 아래에 묻어두곤 했었다.


● 하지만 구대륙은 인육을 먹지 않았다

구대륙(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서도 
아메리카 대륙과 마찬가지로

식인의 풍습이 있었던 곳이 있었다.
50년 ~ 100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정글, 동남아시아 지역, 파푸아뉴기니 등지에서는
버젓이 식인의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지역은
모두가 대형초식 동물이 살기 힘든

열대 우림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성립 단계까지 진화를 하지 못한
원시 사회였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반면에 구대륙의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그 어느 곳도 인육을 상습적으로 먹지는 않았다.

물론 기근으로 인한 식인의 사건은 
동서고금 어디서든 존재했다. 
▲ 기근이 들면 인육도 횡행했다

또 용맹함을 상징하기 위해
전쟁 포로의 피를 마신다던지, 

살점을 조금 뜯어먹는다든지, 
장기를 적출해 먹던 사례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혹은 중국, 인도, 이집트에서는
상류계급의 비뚤어진 미각을 위해 

별미 요리로 
식인이 채택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구대륙의 문명국가들에서는
신에 대한 공양 + 식인으로 이어지는 퍼포먼스에서

인육이 선택된 사례는 결코 없었다.
왜냐?

대체할만한 가축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소, 염소, 양, 낙타, 말, 
돼지, 닭, 오리 등등..

다만 전통시대 농경사회에서 
가축들은 먹기에 매우 귀했다.

심지어 농경과 유목의 
접경지대에 살고있던 이스라엘 민족들 조차

고기를 먹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당시 기록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고서는 
소고기나 양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이는 오늘날 
다른 유목민족들에게도 나타난다. 

동아프리카의 목축민들은 
가축이 손실되는 것을 최대한 막고자


대부분은 짐승의 고기 대신에
피와 젖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소의 몸에 상처를 내 피만 주기적으로 받아 마신다.
 
따라서 전통시대 구대륙에서
귀한 고기를 분배한다는 것은

곧 권력자들의 
정치적 안정 수단이 되기도 했다.

마치 아즈텍의 
황제처럼 말이다.

때문에 권력자들은 
귀한 고기를 나눠줄 때면

반드시 '의식'이라는 요란한 퍼포먼스를 통해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고,

의식이 끝나면 잔치를 베풀어
고기를 구성원들에게 분배하면서

스스로의 권력을 
다지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권력자의 고기 분배 퍼포먼스는 
사실 인류의 본능이었고
▲아랍인들은 낙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은 말,
한국은 돼지머리가 대표적인 희생물이다.

아즈텍의 황제는 불행히도 마땅한 고기가 없었기 때문에
인육을 사용했던 것 뿐이다.

▲예수 또한 유월절 축제에서 음식을 나눠주며
빵을 가르켜 "이것은 나의몸이요" 포도주를 가르켜 "이것은 나의 피요"라고 말했다.


● 아메리카 대륙의 저주

지금으로부터 만 3천년 전 북미 대륙에는 
거대한 운석이 충돌을 하게 되는데

운석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빙하가 녹아

엄청난 양의 담수가 
한꺼번에 북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참고

그 결과 북대서양의 
해류 순환이 중지되면서

북미 대륙에는 난데 없는 
빙하기가 도래하게 되었고

이 시기를 
흔히 '어린 드리아스기'라고 한다.

이때 북미 대륙의 거대 초식동물들은
모두가 전멸하게 된다.

당시까지 북미대륙에 존재했던
매머드, 낙타, 말 등은 이때 모두 사라지게 된다.

오직 버팔로라는 
들소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로인해 신대륙의 인류는 
이후 뜻하지 않는 비극을 맞게 되었으니,

바로 마땅한 단백질원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상하네. 칠면조와 개를 먹으면 됐잖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가 있어."

"왜?"

"개는 고기를 먹어야만
가장 잘 자라고 잘 번식하는 개체임."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는 
곡물을 먹어야만 가장 잘 자라고 잘 번식하고.."

"아! 그러니깐 비싼 것만 처묵하니깐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네."

"그렇지. 대신 대형 초식동물들은.."

"풀, 잎사귀 따위를 먹어야만
가장 잘 자라고 번식하는 동물이지."

"아! 대형 초식동물이 가축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이유가 있었네."

결국 개와 칠면조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가로채가는 가축들이었기 때문에

아즈텍인들은 
저울질을 해보다가

사람 고기 먹는 쪽으로 
나름 합리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 아즈텍 개(오늘날 치와와의 조상)와 칠면조
 
물론 사람을 사냥하는 일이란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특히 무장한 사람을 사로잡는 일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 동물성 단백질을 공급받을 길이 없다면

식인에서 얻어지는 이득은
비용을 커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독 예외인 지역이 있었다.

바로 안데스산맥에 자리잡고 있었던
잉카제국이었다.

"이곳에는 라마, 알파카라는
가축이 있었거든."

▲ 라마(좌), 알파카(우)

"어! 어린 드리아스기 때의 
피해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네?"

"아무래도 피해 지역인
북미 대륙에서 멀었으니깐."

"아!"

"또 기니피그라는 
번식력 좋은 가축도 있었지."

때문에 잉카제국의 황제는
의식에서 라마, 기니피그 고기를 이용할 수 있었다.
▲ 기니피그

"그런데 북미의 인디언들에게도 
버팔로가 있었잖아."

"버팔로가 사나워서 
가축화가 어렵더라도,"

"사냥할 수는 있었으니깐
굳이 식인은 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사냥이란게 
그리 안정적인 수입원이 못됨."

"가축이 있어야 비로소 
안정적인 단백질원을 얻게 되는 것이지."

▲ 이런 모습도 유럽인에 의해 말이 들어오면서 부터다.
이전에는 순전히 뜀박질 하면서 사냥을 해야 했었다.

"때문에 북미 인디언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아야 했었음."




● 소소한 얘기

오늘날 바비큐라는 말은
카리브어의 'barbricot'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인데

여기서 '카리브'는 16세기 당시 
카리브해 인근에 만연했던 식인종들 때문에 생겨난 말로

'카리브'라는 자체가 
어원이 cannibal에서 왔다.
▲ 로빈슨 크루소의 식인종들도, 악명 높은 카리브해의 식인종이었다.

그런데 그런 카리브해의 식인종들은
인육 파티를 할때

늘상 푸른 나뭇가지로 만든 
석쇠를 사용했는데

이를 당시 식인종들은 
카리브어로 barbricot라 했던 것이다.



참고 문헌 : 식인과 제왕 (마빈 해리스), 환경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시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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