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元 )나라 1271~1368
몽골제국 1206 ~ 1368
양며
● 칭기스 칸
재위 1206 ~ 1227, 테무진
1206년 몽골 통일
1207년 서하 원정 : 잔당 토벌 + 교역로 확보 목적
1212년 금나라 원정 : 거란족 도움, 금 관리 야율초재 간언으로 갈아엎는 대신 징세 + 공성전 체득
계급폐지, 인종차별 금지, 종교자유(이슬람에는 혹독), 약탈혼금지
칭기스칸의 네 아들
차가타이 : 둘째, 주치와 사사건건 대립, 중앙아시아에서 칸국 건국
오고타이 : 셋째, 대칸 즉위, 금 정복
칭기스칸의 가계도
재위 1229 ~ 1246
술꾼
종교에 관대 (이슬람교 포용)
오고타이 사후(死後) 바투의 유럽 원정포기(후계자 선출 문제로)
재위 1246 ~ 1248
오고타이 아들
바투와 유럽원정 때 사이 안 좋아짐
왕권강화 ->귀족들 불만
2년만에 하직 -> 칸의 자리를 놓고 오고타이派 vs 바투派 다툼
재위 1251 ~ 1259
왕으로 추대된 이유 : 힘이 약한 툴루이 집안이라
황권 강화 위해 대대적 숙청
불교 vs 이슬람 vs 기독교 배틀 일화
원나라 1271 ~ 1366
몽골제국의 확장과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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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1260 ~ 1294
원나라 시조, 몽골제국의 마지막 칸
1271 대칸 -> 대원으로 국호개정 (서쪽의 칸국들은 자립의사를 명확히함)
1270 고려 복속
1274 일본 원정
1279 남송 정벌
1280~1290 일본, 동남아 원정 : 베트남 원정 실패
인구 : 8천만명, 면적 : 1200만 Km2, 인구밀도 : 7명 / Km2
베이징(대도) 천도
중국 관료제 체택
유학 천대, 과거제 폐지
실용학문 중시
몽골 지상주의
재위 1294 ~ 1307
서쪽 칸들과 화해 : 느슨한 연합으로 다시 묶어 -> 팍스 몽골리카 성립
해상무역
일본과의 국교
● 쇠퇴기
테무르칸 후계자 없이 죽자 -> 쟁탈전 (귀족들의 권력다툼) -> 잦은 황제 교체
전염병 : 당시 유럽을 쓸고간 페스트와 비슷
농촌황폐화 : 천재지변 + 남송인 차별정책 + 상업중시 정책
대도를 버리고 몽골초원으로 들어간 시기
쿠빌라이 가문의 자손이 끊기면서 단명
원나라 일반
● 사회적 특징
라마교, 기독교, 이슬람교 전래
국제적 + 서민적
중앙집권제와는 거리가 먼 봉건사회 수준
1/3 정도가 정복활동 중 본붕된 군벌들 영지, 사실상 독립지
● 경제적 특징
목화재배 시작
상공업 발달
명(明 )나라 1368~1644
명나라 전기(前期)
● 홍무제
재위 1368 ~ 1398, 주원장
한족왕조 회복 + 몽골풍속 배격
송대 성리학적 규범중시 -> 중앙집권체제 확립
성리학 관학화 (성리학자를 관리로 임용), 과거제
육유 : 백성 교육서(효도, 공경, 화목 강조)
6부 직속체제 : 황권강화
이갑제 : 향촌의 범죄와 유랑
재위 1402∼1424
남경 -> 베이징 천도 (자금성, 북방 몽골족 침입을 더욱 효과적으로 방비하기 위해)
대외정복 : 흑룡강 하류 + 베트남 정벌 + 티벳회유 + 티무르 정벌계획
해외무역로 확장 : 정화의 남해원정
토목사업 : 수리시설, 대운하 개수
무리한 원정 + 사업-> 국력소모(후대 황제들이 고생)
조선은 불공평한 조공 바치느라 빠듯한 시절
영락제가 조선여인 좋아해 후궁으로 많이감 (한확 벼슬 받기도)
재위 1425 ~ 1435
내각대학사 설치 : 직계제 -> 재상정치
환관 교육시키는 내서당 설립 -> 환관 권한 강화
당시 조선에 사신으로 온 환관들의 횡포↑
후궁 중에 한확의 여식이 있었음
재위 1435 ~ 1449, 1457 ~ 1464
9살 나이로 즉위 -> 환관의 전횡
토목의 변 (1449) : 오이라트가 명과 교섭제의 -> 거절 -> 침입 -> 50만 대군이끌고 전쟁 -> 패배 후 포로
포로생활 후 송환 -> 유폐 생활
영종파 vs 경태제파 -> 영종파 변을 일으켜 -> 다시 영종 즉위
유언으로 비빈 순장(몽골 풍습) 금지
재위 1449 ~ 1457
정통제 동생
토목의 변 복수 : 정통제 귀환 -> 유폐
병으로 눕자 정통제파 쿠데타 -> 폐위, 한달 뒤 병사(암살)
재위 1464 ~ 1487
도에 심취 : 방술사, 승려를 고관에 앉힘
환관 기용 : 매관매직
재위 1487 ~ 1505
불우한 소년기 : 성화제의 후궁 만귀비에 의해 어머니 독살당함 -> 민가에서 몰래 양육됨
만귀비 용서 : 대인배
대명률 재정비 + 타타르·여진족과 관계개선 -> 명나라 부흥 꾀함 (홍치 중흥)
정실황후에만 충실한 황제 (금욕주의)
인구 : 1억 2500만명, 면적 : 650만 Km2, 인구밀도 : 19.2명 / Km2 (당시 조선은 40명, 일본은 50명정도)
4대 암군기 (4대 암군 : 정덕제, 가정제, 만력제, 천계제)
재위 1505 ~ 1521
뱃놀이하다 물에 빠져 익사
재위 1521~1566
몽골, 왜구침입 시기
중국판 예송논쟁 (대례의 의) 발생 -> 간신배들의 측근 정치
도교에 심취-> 똘끼짓 (궁녀 학대)
환갑직전까지 나름 장수 (정력제로 수은 가득한 선단을 그렇게 먹고도)
재위 1572 ~ 1620
병을 핑계로 30년간 직무거부 + 낭비벽
인구 : 1억 6천만명, 면적 : 650만Km2, 인구밀도 : 24.7명 / Km2 (당시 조선과 일본은 각각 55명)
임진왜란 파병 : 이를 비꼬아 고려의 천자, 조선의 황제라는 별칭
재위 1620 ~ 1627
목공일에 심취 : 궁궐 미니어처 완벽 재현할 정도
문맹에 가까웠음
1628 ~ 1644
천계제 이복동생
부지런하지만 의심이 많았던 단점
성리학 배척, 서양 과학 도입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 자살
외세침입 + 환관횡포 + 당쟁 + 재정악화 -> 이런 와중에 군비충원을 위한 가혹한 수탈
산시성 지방 대기근 -> 이자성의 농민군 반란 : 토지분배 + 조세감면 요구
세력확장 -> 위수 점령, 대서(大西)건국
북경 공격 -> 명 황제 자살 -> 스스로 황제에 오르나
곧 청에 패배
명나라 일반
● 사회적 특징
사회 주 지배층 : 신사(향신) -> 치안유지, 민중교화, 각종 정책사업 주진, 조세징수
양명학 : 성리학의 형식화에 반발
고증학 : 경서를 실증·객관적으로 연구
● 경제적 특징
상공업 : 면, 비단, 수공업 발달
쌀농사 : 양쯔강 중상류 지역까지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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