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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쉽게 보는 동유럽 역사 : 오늘날 슬라브족 국가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출처 레알뻘짓 블로그 | 만쭈리
원문 http://blog.naver.com/alsn76/40206234018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의 피지배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고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일명 오헝국)

100년 전까지 유럽 중부에 있었던 나라였고
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오헝국은 
참으로 괴이한 나라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연합하여
나머지 여러 슬라브국가들을 지배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 나라의 국기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반반씩 합쳐진 모습이다

역사적으로도 하나의 집단이 
여러 민족을 지배하는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두개의 집단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 국가를 지배하는 경우는 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했으니 피지배층으로 살아가는 
슬라브인들의 고충은 더욱 가중됐다.
 
▲ 당시 슬라브인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체코 사람들은
체코어 교육이 금지되고, 독일어를 배우도록 강압 받았고

헝가리의 지배를 받던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원래 발달된 공업지대였지만

헝가리인들의 방침에 따라, 
농업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결국 오헝국의 민족 탄압은
커다란 불행(1차 대전)을 초래하게 되었다.
 
▲ 사라예보 사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 1914년)

오헝국 내의 여러 슬라브족들은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으로

차츰 '범 슬라브주의'라는 
민족주의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 당시 슬로바키아인 '사모 토마시크'가 쓴 
슬라브족 찬양시 

'오! 슬라브족이여'에 
노래 가락이 붙여져 '대 유행곡'이 되었고

파란색과 흰색과 빨간색으로 삼등분 된 깃발이 
범 슬라브주의 운동의 상징물이 되었다.
 

'오! 슬라브족이여'는 아예
슬라브족들의 비공식 국가가 될 정도였다.

범 슬라브주의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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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헝국 정부는 이 노래를 법으로 금지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 슬라브족이여'는 그 어떤 강렬한 민족주의 구호보다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 1차 세계대전의 일화 : 오! 슬라브족이여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과 연합국 양쪽에는 
많은 슬라브족 병사가 소속되어 있었다.
▲ 오헝국 병사

참호전 대치 중에 한쪽에서
'오! 슬라브족이여'를 부르고 

반대편에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
양쪽 모두 슬라브족 병사라는 뜻이었다.
 

이런 경우 양쪽 군대는 
치열한 전투를 피하고 

전쟁놀이를 즐기며
최대한 동족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했다.

이런 훈훈한 참호전의 에피소드는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에만 있었던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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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 캐롤송을 주고 받던 실화를 그린 영화
(참고로 네이버 평점이 9점을 넘는 역대급 명작)

그러다가 오스트리아 제국에 소속된 
많은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병사가 

오! 슬라브족이여를 부르며 
연합국에 속한 세르비아, 러시아 형제들에게 투항했다.

그 중에는 공식적으로 
오헝국에 반대하는 슬라브족 부대도 많았다.
 

1차 대전 초반 오헝국이 
객관적으로 한수 아래인 

세르비아 군대한테도 깨진데에도, 
이 노래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1차 대전 이후 오헝국이 와해되면서
범 슬라브주의는 최고조에 이르렀으니,

발칸반도에는 
곧 여러 슬라브족 국가들이 등장하게 되고
 
▲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등이 새롭게 독립했다.

'오! 슬라브족이여'는 
곧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난 뒤 
유고의 티토 대통령은 '오! 슬라브족이여'를 폐지하도록 했다.

 티토 
"민족주의는 재앙임. 
나찌랑 다를게 뭐야?"

하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국가가 없었다.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우리에게 이만한 애국가가 또 어디있는가!"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나찌군과 싸우면서 
그 얼마나 애국심을 불살랐다고."

이런 심리는 옛 소련의 국가를 버리지 못하고
재활용할 수 밖에 없었던 러시아의 사정과 다르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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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 중 하나라는 소비에트 국가

결국 티토는 정권 말기에 이르러
'오! 슬라브족이여'를 다시 국가로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


● 유고내전 : 범 슬라브민족주의의 종말

이후 슬라브족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1990년대 이후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오! 슬라브족이여'는 
더 이상 슬라브족의 자부심을 세워 주지 못했다.
 

동슬라브족이 세운 통일 러시아 제국(이후 소련)은 
300년만에 붕괴되었고

서슬라브족 형제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생활한 지 
70년만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 '오! 슬라브족이여'를 국가로 채택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국가들은 

형제, 우정 따위를 내던지고 
서로 피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끔찍한 학살과 만행, 
인종 청소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2006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분리되면서
결국 남슬라브족 국가들도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

'오! 슬라브족이여'는 
더는 단결의 원동력이 될 수 없었기에

구 유고연방의 모든 국가들은 
이 국가를 폐지하고 새로 국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독일 월드컵에 출전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축구 대표팀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분리되기 이전에
본선에 진출했으니,

어쩔 수 없이 단일팀으로 나와야 했는데
국가가 문제였다.

'오! 슬라브족이여'를 다시 국가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사실 대부분 세르비아 선수들)

멍한 표정을 짓거나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가 선수들에게 
용기를 복돋워 주기는 커녕 

선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경기 결과가 좋을 수 없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사실상 세르비아 단일팀)
'3전 전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광탈했고,

동시에 슬라브족의 민족 공동체 역사도 
이때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파란색, 흰색, 빨간색으로 이뤄진 슬라브족 깃발은 
여전히 슬라브 국가들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오! 슬라브족이여'에 나타난 슬라브 민족정신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게된 것이다.


● 슬라브족은 누구인가?

먼저 슬라브족(Slavs)의 
어원을 알아보자.

항간에 노예(Slave)에서 유래했다는 썰이 있는데,
사실 대단한 오해다.

이걸 퍼뜨린 장본인은 
독일 나치였다.
 

 
"슬라브의 어원은 '슬레이브'에서 온거임."

 
"중세시대 투르크족이 동유럽을 지배했을 때
슬라브족들을 유럽이나 중동에 노예로 팔면서 생겨난 말임."

"고로 폴란드, 러시아넘들은 
근본이 노예임!"

하지만 실제 어원은 영광, 찬양을 뜻하는 라틴어, 
Slava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Slavs라는
강 이름에서 유랬다는 설이 있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적어도 나치가 선동했던 '노예설'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슬라브족의 기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이유는 

슬라브족이 오랫동안 
문명의 테두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6세기까지 세계 어떤 역사에도
슬라브족에 대한 기록은 없고,

9세기가 되어서야 슬라브족들은 
문자를 사용하게 된다.
 
▲ 키릴문자

따라서 슬라브족의 기원은 
고고학이나 언어 연구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최근 유전학과 
언어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슬라브족은 유럽의 라틴-게르만족보다
인도-이란인에 가깝다고 한다.

참고로 슬라브족은 
크게 다음과 같이 3그룹으로 나눠진다.
 

서슬라브 :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남슬라브 :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동슬라브 :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 슬라브족의 초기 정착지

고고학 자료를 분석하여 볼때
가장 유력한 곳은 바로 여기라고 한다.
 
▲ 풀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접경부근

기원전 1000년을 전후로 해서 
이곳에 최초의 슬라브족 조상들이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점차 터를 넓혀 6세기 무렵이면
동유럽 평원 일대에 부족 집단을 이루며 살아간다.
 
▲ 게르만, 동로마는 문명사회였지만 슬라브족은 문명 밖의 사회였다.

그런데 6세기 중반에 동쪽 아시아 초원에서
'아바르족'이라는 유목민족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 아바르족 

이들의 출현은 
마치 200년전 훈족과도 비슷했다.

사실 아바르족은 아시아 북방 유목민족이었던 
'유연'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 아바르족 기병

어쨌든 이들의 출현으로 
슬라브족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1. 남는다.
2. 도망친다.

그리고 이후 슬라브족은 
각각 이렇게 찢어지게 된다.

1번을 선택한 슬라브족은 서슬라브족으로
2번을 선택한 슬라브족은 남슬라브족으로 
 


● 슬라브족의 대이동

아바르족의 침략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고향으로 버리고 떠난 이들은

여기(지도참고)에 살고 있던 
슬라브인들이다.

6세기 중반부터 이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비잔틴 제국 영토인 발칸 반도로 들어갔다.

 슬라브족 
"비잔틴은 잘 사는 동네니깐,
가더라도 굶어죽지는 않겠지."

당시 동로마(비잔틴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치세 아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을 때였다.
 
▲ 6세기 중반 동로마의 영역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때까지 유럽에 등장한 모든 적을 물리치고 있었다.

반달족을 멸망시키고,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을 정복하고,

프랑크족에게 조공을 받는 등 
로마 제국 전성기 때의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고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에헴!"

그런데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이런 빛나는 업적은 

뜬금없이 등장한 '이것'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바로 림프선 페스트였다.
이것은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과 유사한 전염병이었다.

전염병이 발생하더니
2년만에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인구는 1/3으로 줄었다.
 

게다가 정복 전쟁으로 
막대한 재정이 지출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무리하게 벌인 대규모 사업(소피아 성당건립) 때문에
국고는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 성 소피아성당

이럴때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덮쳤으니,
비잔틴 제국은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슬라브족 피난민까지 등장하면서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비잔틴 제국은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 비잔틴 영토로 우후죽순 밀려오는 슬라브족들

6세기 중반 이후 비잔틴 제국은 
사방의 적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리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페르시아가 제국의 영토를 약탈하는가 하면
불가르족(투르크계 유목민)과 슬라브족이 발칸반도로 침입했다.

특히 비잔틴 제국의 수비가 소홀한 틈을 타 
발칸 반도를 장악한 슬라브족은 

우후죽순으로 난립하여 
그리스 반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도 전염병 + 페르시아 침입 + 국고난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던 비잔틴 제국은 

눈 뜨고 
슬라브족의 도발을 지켜봐야만 했다.

 슬라브족
"비잔틴 넘들, 이거 완전 호구들이네. 하하"

6세기 후반이 되면 슬라브족들은 
발칸반도 전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7세기가 되면 더 이상 발칸반도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비잔틴 제국의 지배권은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그 주변 지역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헤라클리우스라는 난세의 영웅이
비잔틴의 새 황제로 등장하면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헤라클리우스
"이것들이.."

그리고 기적처럼 
다시 태어난 비잔틴 제국 군대는 

동쪽 국경지역에서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제압하더니

아바르족을 완전 격퇴하여
발칸반도에서 완전히 쫓아냈다.

그러자 다음 차례는 
슬라브족들이었다.

 헤라클리우스
"이런 밥버러지 같은 넘들, 
이제야 너희들을 손봐줄 때가 됐구나."

하지만 슬라브족들은 이미 발칸 반도에 
뿌리를 내려도 너무 깊게 박았다.

 헤라클리우스
"아놔, 이걸 어떻게 다 소탕해.."

이럴때 
슬라브족들은 애원한다.

 슬라브족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슬라브족은 스스로 비잔틴 제국에 편입되게 된다.


● 남슬라브족 역사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7세기 이후 발칸 반도에 정착한 슬라브족은 
크게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로 나뉜다. 

먼저 세르비아 부족은 
이런 루트로 발칸반도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헤라클리우스 시절, 
비잔틴의 신하를 자처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오늘날 세르비아 영토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7세기 중반에는 최초의 세르비아 왕국이 건설되고
비잔틴 제국 내에서 '반독립 국가'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9세기 중엽에 이르러 
정식으로 기독교 '동방 정교회'에 귀의하게 된다.

한편 크로아티아 부족은 
이런 루트로 발칸반도에 정착하게 되어
 

이른바 '달마티아'라는 땅에 정착한다. 
달마시안이라는 '특산개'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런데 달마티아는 
전통적으로 동로마와 서로마의 접경지대였으니

크로아티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자,
곧바로 비잔틴 교회와 로마 교회의 목표물이 되었다.

 교황
"우리 교회로 와."

당시 두 교회는 서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초기 정착할 때만해도 
비잔틴 교회가 먼저 기독교를 전파했으나,
 
▲ 동방정교회

이후 로마 교회가 
적극적으로 공세를 가해

9세기 즈음에는 크로아티아인 대다수가 
로마 카톨릭에 귀의하고, 라틴어를 표기 문자로 채택하게 된다.
 
▲ 로마 카톨릭

그러자 원래 한 뿌리였던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으니

동방 정교회를 신봉하는 세르비아는 
키릴문자를 사용했고, 비잔틴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게되지만

크로아티아인은 
로마 카톨릭을 믿으면서 

라틴어계 문자를 사용했고,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받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의 벽이 높아지면서 
두 민족 사이에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 크로아티아(좌), 세르비아(우) 국기

세르비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은 
대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글로 표현하는 순간, 
그들의 언어는 서로에게 외국어가 되었던 것.


불가리아

불가리아인의 혈통은 
매우 복잡하다.

사실 불가리아의 지배층은 
흑해 북부 연안에서 온 불가르족이다. ☞참고
 

6세기 중엽 아바르족의 침입을 받고
불가르족 역시 찢어지게 되는데, 아래와 같았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불가리아와 
현재 러시아 연방 내의 타타르 공화국은 사실 먼 친척관계인 것이다.

어쨌든 발칸반도로 이주한 불가르족들은
그곳에 먼저 와서 자리 잡은 슬라브족을 만나게 된다.

 불가르족 
"이놈들이 먼저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그리고 불가르인들은 
슬라브족을 정복해서

소수의 불가르족이 다수의 슬라브족을 지배하는
불가리아 왕국을 만들게 된다.
 
▲ 기독교인(비잔틴시민)을 살해하고 있는 불가르족

하지만 투르크계 불가르족은 
수적으로 열세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슬라브족에 융화되게 된다.

때문에 오늘날 불가리아는 
사실상 슬라브족의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 불가리아 국기

그런데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이 
비잔틴 제국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한 것과 달리

불가르족은 발칸 반도에 들어간 직후부터 
비잔틴 제국과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무엇보다 불가르족이 
비잔틴 제국 중심부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아

비잔틴 제국 입장에서 
매우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놔, 우리 집 앞에 
차를 대면 어쩌자는 거임?"

때문에 비잔틴 제국과 불가르족의 전쟁은 
4세기 넘게 이어졌고

이것이 중세시대 발칸 반도의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하지만 불가리아인들도
비잔틴의 발달된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 불가리아 교회

9세기 중엽 비잔틴 교회가 
불가리아에 진출한 이후

불가리아인들 역시 동방 정교회로 개종하고
콘스탄티노플 교황에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그리고 10세기 초반에 불가리아인들은
비잔틴 수도사가 발명한 

글라골 문자를 발전시켜
'키릴 문자'를 만들게 되어
 
▲ 키릴문자

이후 키릴 문자는 
슬라브족들의 대표적 문자로 널리 사용되게 된다.

오늘날 러시아, 벨로루시어, 우크라이나어, 불가리아어, 
마케도니아어, 세르비아어 모두 키릴 문자로 표기한다.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인은 
원래 서슬라브족에 속해 있었는데

7세기 중반 마자르족이 침입해 오자
이를 피해 이동하면서 

서슬라브족과 떨어졌고
점차 남슬라브족에 편입되게 된다.
 

이후 슬로베니아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향 하에 있었고
1000년 이상 오스트리아에 속했다.
 
▲ 슬로베니아 국기

한편 보스니아와와 몬테네그로는 
사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인들이었다.

그런데 15세기에 
오스만 투르크족이 침입을 했을 때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오늘날 보스니아와 몬테네그로인들이 된 것이다.
 
▲ 몬테네그로(좌), 보스니아(우) 국기


이후의 남슬라브족

남슬라브족은 400년간 비잔틴의 영향 아래서
독립적(혹은 반독립적)인 국가로 살아가다가

14세기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병합되고
19세기 이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게된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대대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 서슬라브족 역사

체코와 슬로바키아

서슬라브족은 아바르족이 침입해 왔을때
그대로 그 자리에서 버텼던 사람들이다.
 

 슬라브족
"뭐 죽이기야 하겠어."

그랬는데 그 대가로
근 250년간을 아바르족의 노예로 살아가야 했다.

그러다 8세기 후반에 이르러 
프랑크 왕국이 아바르족을 제압하자

서슬라브족들은 
겨우 독립할 수 있었으니

9세기 초반, 
마침내 '모라비아'라는 왕국을 건설되게 된다.
 

그랬는데 
프랑크 왕국이 딴지를 건다.

 프랑크 왕 
"니들 우리 아니었으면 
독립이나 했겠어?"

이러면서 호시탐탐 
실력행사를 하려는게 아닌가!

 모라비아 왕 
"아놔, 노예생활도 이젠 지긋지긋해."

 모라비아 왕 
"살아 남으려면 
비잔틴 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어."

때문에 모라비아는 
비잔틴 제국의 힘을 빌리기 위해

동방 정교회에 귀의할 것을 선언하고, 
비잔틴 교회에 전도사 파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평화의 시절은 
100년만에 끝났다.

10세기 초반 동방의 유목민족 마자르족이 침입하자
모라비아는 곧 망하고 말았으니
 
▲ 마자르족 기병

이때 모라비아 영토는 
동서로 쪼개지게 된다.

서쪽(체코)은 신성로마제국에 귀속되고
동쪽(슬로바키아)은 헝가리의 지배를 받게된 것.
 

그리고 그런 상황은 
무려 1,000년을 가게된다.

그러다 20세기 초반이 되면 
다시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로 합쳐지게 된 것이다.
 
▲ 슬로바키아(좌), 체코(우) 국기

하지만 다시 반세기가 지난 20세기 후반, 
모라비아는 분단국가를 자청하게 된다.

1,000년 동안 떨어져 지내다보니
서로 이질감이 컸던 것이다.


폴란드

폴란드인은 서슬라브족 중 
유일하게 아바르족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

즉 서슬라브족 중 아바르 침략을 받지 않은 동네가
나중에 폴란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10세기 이전까지 
폴란드인들은 줄곧 원시 씨족 문화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0세기 중반 
로마 교회가 적극적으로 

카톨릭교 전파에 나서면서 
폴란드인도 카톨릭으로 개종하게 되고

이후 신성로마 제국 황제가 
폴란드인 수장에게 공작의 작위를 내리면서

폴란드도 본격적으로 
국가 체제를 갖추게 된다.


● 동슬라브족 역사

동슬라브족의 9세기 이전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문명 세계와 
철저히 등을 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동슬라브족에 관련된 고고학 자료는 
수와 양이 적어 역사 자료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 동슬라브족 촌락

때문에 이들이 6세기 중엽 아바르족의 공격을 받고
어디로 도망을 쳤는지도 묘연하다.

그냥 사방으로 뿔뿔히 흩어졌다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 고대 동슬라브인

그러다가 바이킹이 
유럽 전역으로 활개를 치는 9세기가 되면서

동슬라브인들의 흔적이 
최초로 역사에 남겨지게 된다.

당시 바이킹은 해적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상인이기도 했다.

이들은 발달된 비잔틴 제국과 교류하기 위해
스칸디니비아 반도에서 발트해를 지나

비잔틴 제국에 이르는 무역로를 대대적으로 개척했다.
이렇게 말이다. (지도에서 빨간색 루트)
 
▲ 발트해 → 핀란드만 → 네바강 → 드네프르강 → 흑해 → 콘스탄티노플의 무역로

이 무역로는 
흔히 '발트해 실크로드'로 불린다.

그런데 발트해 실크로드를 지나다 보면 
반드시 동슬라브족과 만나야 했다.

그리고 이럴 때면 
바이킹 상인들은 해적으로 변모했다.

 바이킹 
"상대가 강하면(비잔틴) 교역을 하고
상대가 약하면(슬라브) 그냥 뺏어라."

때문에 강가에 사는 동슬라브족들은 
숱하게 바이킹 선박에게 약탈을 당해야 했고
 

상황이 이러자 
동슬라브족들은 서로 뭉쳐서

점점 하천 주변에 
요새를 세우고 살게 된다.
 
▲ 요새 건설

이것이 바로
동슬라브족 도시국가의 시작이었고

그렇게 형성된 도시국가 중 
유명한 곳이

라도가 호 연안의 노브고로드, 
드네프르강 유역의 스몰렌스크와 키예프 등이다.
 

그런데 이들 도시국가들은 
9세기 후반에 바이킹에 의해 차례로 점령 당하고

이후 키예프를 중심으로 국가가 세워지게 된다.
이름하여, '키예프 루스'다.

다만 키예프 루스의 지배층은 바이킹족이었지만
대다수 국민은 동슬라브족이었기 때문에
 
▲ 키예프 루스 세력범위

결국 소수 바이킹족이, 
다수 슬라브족에 동화되어

키예프 루스는 
슬라브족 국가로 분류되고 만다.
▲ 키예프 루스 병사

한편 키예프 루스는 비잔틴 제국을 침입하려고 
콘스탄티노플을 자주 침략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그러다가 된통 당하고 말았고,

  키예프 루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결국 10세기 후반 키예프 루스는 
비잔틴제국과의 화친을 원하게 되었으니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1세는 
비잔틴 공주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블라디미르 1세 

동방 정교회에 귀의할 것을 
비잔틴 제국 황제에게 약속하게 된다.

이것은 동방 정교회 전도 역사상 
매우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비잔틴 제국은 
공주 한명의 희생으로 

동방 정교회 세력을 
기존의 두배 이상으로 확장할 수 있게되기 때문이다.

 
"루스넘들 땅덩이도 크고, 
인구도 많잖아."

그리고 이후 키예프 루스 교회는 
비잔틴 제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동방 정교회 교회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모스크바에 있는 교회가 

콘스탄티노플을 대신해
동방 정교회를 대표하게 된다.
 

하지만 키예프 루스는 
블라디미르 1세가 죽은 뒤 분열되게 되어

노브고로드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한 북부지역은 
러시아 민족을 형성하게 되고,
 

민스크를 중심으로 활동한 중부지역은
오랫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게된다.
 
▲ 벨라루스(백러시아) 국기

그런가하면 키예프를 중심으로한 남부지역은
오랫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은 탓에 

다른 슬라브족과 동떨어진 상황에 놓이게 되어,
훗날 우크라이나 민족을 형성하게 된다.
 
▲ 우크라이나 국기


● 슬라브족 대이동의 결과 : 오늘날 유럽의 양대세력으로 성장하다.

4세기 중엽 
훈족의 대이동과 함께 시작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찬란했던 로마 문명이 붕괴된다.
 

그리고 6세기 중엽 아바르족의 대이동과 함께 시작된
슬라브족의 대이동으로

그리스 문명의 후계를 자처하던 
비잔틴 문명은 점차 쇠락하고 만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자는 익히 알고 있으면서
후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왜 그럴까?
 

서유럽 중심으로만 
역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역시 동유럽 역사를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1,100년 전부터 유럽은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에 의해 크게 양분되고 있었다.

이는 10세기 초 
유럽의 판도만 봐도 알수 있다.
 
▲ 10세기초 유럽

 
▲ 20세기 후반 철의 장막

물론 슬라브족으로 대변되는 동유럽은
유럽 역사에서 약자일 때가 더 많았다.

서슬라브계의 체코는
오랫동안 게르만 왕국의 간섭을 받았고

폴란드는 한때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지만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국토가 분할되는 불행을 맞았고,

루스족(러시아)은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한채 
200 여년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며
 
▲ 러시아에서 악명 높았던 몽골의 다루가치

남슬라브족은 그야말로
식민 지배의 연속이기도 했다. (비잔틴 → 오스만 → 오스트리아)

그렇더라도 민족성이 죽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만은 대단하다.

바로 이런
잡초같은 생명력 

이것이 오늘날 유럽 대륙을 양분하고 있는 
슬라브족의 저력이 아닐까?


참고 문헌 : 역사를 뒤흔든 대이동 7가지 (북경대륙교문화미디어), 동유럽 들여다보기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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