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220~280
210~230년대
208년 적벽대전
221년 유비 황제즉위 -> 이릉전투 -> 유비사망
유선 즉위 -> 촉오동맹
229년 손권 황제즉위
227~234년 제갈량 북벌, 오의 합비수성
240~260년대
위
238년 요동반란 진압하고 사마의 재부상 -> 조상 부재시 쿠데타 -> 사마씨 정권장악
260년 위황제 조모, 사마소 살해 실패 -> 역쿠데타 -> 바지사장 옹립
265년 그의 아들 사마염이 황제등극
촉
258년 환관득세
264년 성도 함락
오
264년 촉 멸망으로 위의 공격집중
황제 손후 폭정
명장 육항 사망 -> 진의 오(吳)함락 계획준비
279년 쓰촨성에서 강을 따라 공격
280년 건업 함락
삼국시대의 특징
인구급감, 유랑민 급증
요새 + 영지 체계 (자급자족체계)
화폐경제 몰락 : 국가 화폐주조 곤궁, 개인주조로 인해
이 당시 분열된 지역구도는 700년간이나 계속된다 -> 북송시대에도 중국의 경제권은 크게 3지역
요새 + 영지 체계 (자급자족체계)
화폐경제 몰락 : 국가 화폐주조 곤궁, 개인주조로 인해
이 당시 분열된 지역구도는 700년간이나 계속된다 -> 북송시대에도 중국의 경제권은 크게 3지역
서진 265~316
265~280
황족 권력↑ : 왕권강화책 위함
탁발선비(몽골), 모용선비(요동)위협
280~290
사마염의 향락 : 손후의 5천궁녀 흡수, 도합 1만궁녀 (양수레 로또)
권문세족들의 사치, 부정부패 (유방, 조조가 자수성가형인데 비해 사마씨는 전통적 귀족출신 때문)
9품중정제 변질 : 귀족들 고위직 독식
형식적인 유교사상 :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팽배
죽림칠현 득세 : 형이상학적인 현학에 숨어지내는
290~307
소빙기(양자강이 얼을 정도) : 가뭄, 한파
귀족들의 호화 사치 : 황제 曰 “곡식 없으면 고기 먹어”
팔왕의 난
황족 비대화의 결말
팔왕의 난 이후 -> 혼란을 틈 타 이민족 쳐들어 옴, 지방통치 사실상 와해
영가의 난
혼란한 틈을 타서 304년 흉노의 독립선언 -> 서진 공격
사마치 생포 -> 2년뒤 노예복 입고 술 따르게 함 -> 진나라 신하 통곡 -> 사마치 살해
장안에서 임시정부 꾸리던 사마업이 황제즉위
사마업 생포-> 술 따르게 함 -> 진나라 신하 통곡 -> 너도 살해
강남에서 호족을 규합하던 사마예가 황제 즉위 (동진)
서진시대의 특징
'귀족 지지'에 왕권 기반 : 정통성이 취약한 왕조
최초 낮은 품계->실력을 보고 나서 품계하사
5호 16국시대 + 동진 304~439 5호: 흉노, 갈(흉노), 선비, 저(티벳), 강(티벳)
전조 (前趙 304~329)
흉노족
후한말부터 선비족과 함께 한나라의 용병으로 고용됨.
흉노의 분열 (AD 50) 이후 남흉노 대거 산시상에 정착, 중국 방어하는 역할
흉노와 한나라가 BC 2세기에 형제의 맹약을 했다는 근거로 한나라 후계를 자처하기도 (초기에 국호가 漢)
316년 서진을 접수 -> 이후 각 지역을 공격, 복속
325년 낙양 근방에서 후조에게 패배
329년 후조에게 멸망
전량 (前涼 301~376)
301년 장궤가 팔왕의 난 이후 자청해서 양주(감숙성)부임 -> 동진 건국 후 복종
320년 동진의 허가 없이 즉위 -> 이 때부터 전량 정권 독자 성립된 것으로 (동진과는 계속 우호관계)
324년 전조의 침입으로 한때 항복 -> 이후 전조 약화 -> 성한과 교류 왕성
329년 전조, 후조 교체기 -> 후조와 단교
346년 서역 개척 -> 후조와 다툼 (승리)
360년 전진과 다툼
376년 전진에 멸망
성한 (成漢 304~347)
이후 사치, 폭정을 일삼다가 국력쇠퇴
347년 동진에 멸망
후조 (後趙 319~351)
유연의 부하였던 석륵이 건국
319년 전조와 갈라서고 즉위
325년 낙양에서 전조에 승리, 패권 확보
329년 전조 멸망, 수도 업으로 천도
불교진흥
무리한 토목 공사 + 대외 원정 -> 국력 소모
339년 동진 공격
346년 전량 공격 -> 패배
348년 후계자 문제로 대규모숙청 -> 군사반란 -> 진압하고 11세 어린 황제 즉위 -> 혼란 거듭하다 멸망
전연 (前燕 337~370)
모용선비는 요서 일대를 근거지로 살던 부족으로 서진(西晉)에 복종하면서 선비의 다른 부족과 항쟁을 벌였었음
307년 서진 유민 흡수하면서 세력강화
319년 요동 획득 (잔류 서진격파)
337년 전연 건국
338년 후조 침입 격파 + 고구려(고국원왕) & 우문선비 공격
338년 후조의 혼란한 틈을 타서 중원 침투
351년 후조 멸망, 화북의 동쪽 평정
360년 모용각 섭정 -> 나름 태평성대
367년 모용평 실권 부패정치 -> 국력쇠퇴
369년 동진의 북벌을 전진과 연합해서 방어 -> 전공(戰功)을 탐해 모용평이 모용수 죽이려하자 모용수 전진으로 망명
370년 전진에게 항복, 전연 멸망
전진 (前秦 351~394)
350년 후조 멸망 후 저족(티벳계)의 부건(후조의 용병) 자립
351년 장안 점령하고 전진 건국
366년 전연 침공한 동진 격파 -> 전연 멸망
373년 쓰촨정복
376년 전량 + 탁발선비(대) 점령 -> 화북 통일
383년 천하통일 목표로 서역 정벌
하북에서 발원한 후연에 멸망 : 왕맹의 유언(동진 치지말고 그보다 내부단속이나 잘하길) 무시한 대가
비수대전
① 부견이 동진에 사신을 보냄 “항복해라”
② 그런데 사신이 X맨 (어떻게할지 다 꼰지름)
③ 동진 “항복할테니 좀 후퇴해라”
④ 부견 후퇴
⑤ 그러자 전진군 내부에서 “후퇴하는거 보니 털렸다”
⑥ 패닉현상
⑦ 동진군에게 역관광 -> 전쟁하자고 부추겼던 모용수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후연 건국
후연(後燕 384~407)
전연 멸망후 전진의 부견 휘하로 복무-> 비수대전 패배 이후 독립하기로 결심
384년 후연 건국
385년 하북성 대부분 점령 -> 고구려의 요동 습격(고국양왕) -> 다시 탈환
394년 산동 점령 -> 북위(탁발선비) 성장 -> 북위 공격 -> 대패
400년 광개토왕의 신라 SOS 출병 사이에 뒤치기 : 실패
404년 고구려 침입 (요서 빼앗기고 수도까지 위협)
북연(北燕 407~436)
407년 북연 건국
408년 고구려와 화친
409년 측근에게 고운 살해 -> 풍발이 혼란 평정, 스스로 즉위
풍발 : 정치안정 + 고구려와 화친 & 북위와 대립
풍발 사후 : 풍발의 태자 vs 풍홍(풍발동생) 왕위다툼 -> 혼란
풍홍 즉위 -> 내전으로 혼란, 북위침입
436년 북위 침공
동진(東晉 317~420)
- 군약신강 : 확실한 기반 없이 즉위하던 때라, 북쪽 세력 + 토착 호족 협력 운영
- 본격 강남 개발:당시 강남은 인구희박 -> 유랑민 유치 + 개간 장려(세제혜택)
- 위기 극복 : 383년 비수대전 승리-> 이후로 잦은 농민반란
- 멸망 : 무장 환현 반란 진압 명분으로 거병한 뒤 쿠데타 -> 유유의 진압 -> 이후 왕권 찬탈 -> 송 건국
- 사상 : 유교 쇠퇴, 도교 + 불교 흥하기 시작
남북조시대 420~589
북위 (北魏 386~534)
탁발선비
위나라에 조공했던 과거 (국호의 이유) -> 서진, 북방안정 위해 산시성 북부 내줌
315년 대나라 성립
376년 전진에 멸망
386년 북위 건국, 전진의 비수대전 패전후
439년 화북 통일
440년 화북 통일 : 조공국만 20여개국
도교 세력 건의로 불교 탄압
내부 균열 : 선비족의 한인 동화 + 도시 귀족화
470년 균전제 : 토지사유, 대토지소유 억제 -> 민생안정 + 세수확보
삼장제 : 통반장 3분화, 호적조사, 세금 징수
493년 낙양 천도, 선비족 복장 + 선비어 금지 + 한족과 통혼 장려
왕의 성씨 고침 : 탁발씨 -> 원씨
523년 재정난 (전국적인 사탑 건립)
누적된 한화정책 불만
원래 대우가 좋았던 변방(6진) 방어 왕족들 점차 푸대접
6진의 난 초래 -> 반란군 선왕 살해 + 새 왕 옹립 쿠데타 반복
534년 동서로 분리
북제 (北齊 550~577)
당시 화북은 군사력은 서쪽, 경제력은 동쪽 우위
경제력을 배경으로 돌궐과 결탁 -> 북주 격퇴
경제력을 배경으로 돌궐과 결탁 -> 북주 격퇴
왕이 간신배 농간에 속아 명장 처형하는 실정을 거듭하다가
577년 북주에 멸망
577년 북주에 멸망
신라 진흥왕이 조공 사신 보내기도
북주 (北周 557~581)
한화정책 반대, 선비족 풍으로 U턴 : 공용어 선비어, 성씨도 탁발씨
553년 양나라 공격 -> 사천 접수
후경의 난에 개입해 호북성에 괴뢰국가 후량을 탄생, 남조에 타격
572년 막대한 권력과 재산을 소유한 도교, 불교탄압 -> 재산몰수 + 일반승려 병사로 징병
575년 북제 공격
577년 북제 멸망
후량 (後梁 554~587)
진이 양을 찬탈한 왕조이기 때문에 끝까지 괴뢰정권 명맥유지 (강남확장시 정통성 주장 용도)
송(宋 420~ 479)
송, 제, 진 모두 하급무사 출신이 “반란진압->선양“의 테크를 타면서 건국
‘유송’이라고도 함
희대의 병맛 왕조 : 콩가루 집안 + 인간 도살장 등의 암군이 줄줄이 탄생, 중국 왕조 중에서도 특이한 현상
1대왕 유유 하급 군인 출신
동진 말 반란 진압 + 후연 침공 격퇴 -> 명성↑ -> 동진 황제에게 선양 받아 즉위
토착민과 유랑민 간의 구별 철폐 -> 과세 균등화
2대왕 : 싸이코패스 (무고한 사람 채찍질, 후원에서 술장사, 연못&누각 오전에 지어서 오후에 허물게 함) -> 폐위
3대왕 유의륭 (문제) 중앙집권↑
호적정리 + 부세감세 + 농업생산격려 + 화폐경제 부흥
학문격려
배송지 정사삼국지 주석 달게 함
국력상승 (원가의 치)
북위와 전쟁으로 국력소모 (군사비 증가)
태자에게 암살
4대왕 : 황족 주살, 사치향락 , 친모와 정사
5대왕 : 근친상간, 남첩 30명 -> 순장
6대왕 + 7대왕 + 8대왕 : 잔인 + 폭악
유송왕조에 암군이 유독 많은 까닭
① 즉위한 황제가 나이가 어려 경험, 자질 부족 + 시조 유유부터 학문과는 담을 쌓은자, 제왕학 교육부족
② 왕권 약했던 동진의 경우를 반면교사 삼아 종친황족만 주요 군권 차지 -> 황제 자격있는 자들이게 군권까지 줬으니 (팔왕의 난 재현?)
③ 무신정권의 기대와 달리 영토가 야금야금 축소 -> 황실권위 실추 -> 내부통제 강화
제(齊 479~502)
‘소제’라고도 함
남조 국가답게 문화는 발전
문벌귀족과 관료가 융합하지 못하고 황족끼리 암투
1대왕 소도성 : 하급 군인출신
왕실의 반란 진압 ->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
2대왕 무제 : 조세 대납지역 감시관인 태사 파견을 중지 (부정부패로 변질되어)
토지조사, 호적조사, 유랑을 호적에 복귀
신진인사 기용 (영명의 치)
3대왕, 4대왕 : 단명
5대왕 : 남조 특유의 전제군주, 아들의 왕위를 위해 황족의 아들 20명 살해
6대왕 : 황족 + 관료 + 민중까지 살해
양(梁 502 ~ 557)
양의 경우는 “문관출신+직접 반란 -> 선양 -> 건국 과정”을 거쳐 살짝 다름
소연 혼자 50년간 지배
겉으로는 번성 + 뜯어보면 막장 -> 개국 시조가 망국의 군주가 되는 몇 안되는 예
무제 : 9품관인법 개선
불교장려 : 불교에 심취 말년에 툭하면 중이 되겠다고 설침
나름 태평성대
동위의 후경 투항 -> but 이후 양, 동위 국교호전 되자 -> 후경 반란군 이끌고 수도함락, 무제 생포
화폐경제 몰락 : 인플레이션 문제 (새로 주조된 철전은 외면, 구리는 구하기 힘들고)
빈부격차 심화 : 빈민 + 불량배 호구지책으로 군입대 -> 군대가 깡패 집합소
귀족 사치의 극한 (남성화장 + 하이힐)
진(陳 557~ 589)
양나라 말기 내전 이후 : 남조를 지배하던 귀족층 거의 몰락 -> 한인(寒人)으로 천대받던 계층이 신진 주역으로
후경의 난 진압 -> 후속반란 진압 -> 양나라 실권장악 -> 선양 황제즉위
양나라에 비해 열악한 조건 : 영토 축소(사천, 형주 + 장강이북 상실), 내전으로 황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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