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List

2017년 2월 21일 화요일

호주의 역사 : 죄수들이 세운 나라, 원주민의 눈물, 인종주의의 철폐

출처 레알뻘짓 블로그 | 만쭈리
원문 http://blog.naver.com/alsn76/220433132526
호주 개척

● 500년 전 포르투갈인들이 지나쳐간 '미지의 땅'

콜럼버스의 1492년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에서는 '대항해 시대'가 열렸으니,

moon_and_james-39
"가자! 넓은 바다로!"

새로운 땅과 보물을 찾아
보다 멀리멀리 항해를 떠났다.
 

당시 콜럼버스의 명성에 
가린 감이 있지만

또 하나의 위대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인 바스쿠 다가마였다.
 

그는 인도에서 유럽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후추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moon_and_james-1
"와! 대박!"

그런 발견이 있자
16세기 초 포르투갈 선원들은

향신료를 찾아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을 찾게 되었으니,

그중에 가장 유명했던 곳이
일명 '향신료 제도'라는 '몰루카 제도'였다.
▲ 붉은색 : 몰루카 제도

"정향, 육두구, 후추, 계피
여긴 모든 게 다 있네."


그런데 몰루카 제도로 가는 도중에
포르투갈인들은 낯선 땅(호주)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저기 육지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것은 
향신료였지, 땅이 아니었다.

"갈 길 바쁘다능
신경 끄고 그냥 가자능."

때문에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을 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낯선 땅을 본 모습은
1542년 제작된, 

세계 지도를 통해서
그 흔적을 엿볼 수는 있다. ☞ 참고


● 400년 전 '미지의 땅'에 도착한 네덜란드인

호주 땅에 
첫발을 디딘 유럽인은

1606년 호주 북쪽에 상륙한 
네덜란드인 빌럼 얀스(1570~1630)였다. 

하지만 상륙한 얀스는
북부 호주의 거친 땅에 실망했고

 얀스
"뭐야! 온통 사막에 
바위뿐인 불모지네!"

침입자를 공격해 오는
검은 피부의 원주민에 기겁해서

moon_and_james-13
"허걱!"

서둘러 호주 땅을 
뜨고 말았다.

 얀스
"에잇! 땅도 후지고
원주민들은 거칠고.."

그러나 이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은 수그러들지 않아

1616년에 다시 네덜란드인이
호주 서쪽을 탐사했으니,

 하르토흐
"역시 소문대로 황무지 투성이네.
무역을 할만한 상품은 없겠어."

 하르토흐
"그래도 이곳을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부르겠다능."

그렇게 호주의 명칭이
최초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후 네덜란드는 1619년 
지금의 자바 섬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며

식민지 지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데

이때 동인도 회사는 
인근 지역의 탐사를 명령했으니,

 동인도회사 총독
"주변에 어떤 섬들이 있는지
제대로 탐사하고 오라능."

 타스만
"넵"

명령을 받은 타스만은
호주 북부를 탐사하더니 

 타스만
"여긴 검은 피부의 
사나운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


뉴질랜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이곳을  남아메리카 땅인 줄 알았다. 

 타스만
"어라? 내가 너무 멀리 왔나?"

 타스만
"잉카 인디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네."

▲ 뉴질랜드 마오리족

그리고 호주 남쪽을 돌아
자바 섬으로 돌아왔다.
▲ 타스만의 항로

하지만 다른 네덜란드 항해사는
뉴질랜드가 남아메리카가 아닌,

새로운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을 네덜란드 지방인
'제일란트'의 이름을 따서
▲ 네덜란드 제일란트 지방

뉴 제일란트(New Zealand)
이름을 짓게 되고,

moon_special-27
"뉴질랜드라는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능."

또 호주 남부를 지나가다가 
큰 섬을 하나 발견하였으니,
▲ 태즈메니아섬은 우리나라의 면적과 비슷하다

그곳을 타스만의 이름을 따서
타스마니아(태즈메니아) 섬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다.

"선배 항해사
'타스만'에 대한 예우라능."

하지만 네덜란드 탐험가들은
호주의 거친 자연과 원주민에 실망해서

식민지로 만들거나 
원주민들과 교역을 할 생각을 전혀 갖지 못 했다. 

"에잇! 이런 곳은 식민지로 삼아봤자
전혀 얻을 게 없음!"

그래서 호주는 그 후 150년간
그대로 방치되고 만다.


● '미지의 땅'은 영국의 차지가 되다 (1770)

제임스 쿡 선장은 
영국의 항해가이자 지도 제작가다. 

그는 태평양을 3번이나 횡단하며
타히티, 하와이 등 

수많은 섬을 발견하고 
지도로 남겨

▲ 제임스 쿡의 항로

영국의 식민지 개척에 
커다란 기여를 했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 제국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새로운 땅을 발견했다. 깃발을 꽂자.
이제부터 영국 땅!"

"여기도 영국 땅, 저기도 영국 땅!"

그런 그는, 1769년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영국령으로 선포했는가 하면

"네덜란드가 처음 발견했을 뿐,
그 땅을 갖겠다고는 하지 않았잖아."

1770년에는 
호주로 향하게 된다.

 
"뉴질랜드를 차지했으니,
뉴 홀랜드로 가보자."

 
"거기도 주인 없는 땅이니
우리가 먼저 선점해야 겠다능."

그렇게 호주 동부의 한 해안에
닻을 내리게 되었는데,

 
"음, 여기가 상륙하기 좋겠군."

뚯밖에도 그곳은 황무지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름다운 초목들로 가득했다.

moon_special-24
"우아! 굉장한데요.
처음 보는 식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요."

 
"좋아! 그렇다면 이곳을 
식물이 가득한 곳이라는 뜻으로,"

 
"보터니 만(Botany Bay)이라고 하세."

보터니 만, 이곳이 훗날
시드니의 탄생지였고

쿡 선장이 상륙한 장소에는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가 세워지게 된다.

그렇게 시드니에 상륙한
쿡 일행은 곧바로 깃발부터 꽂았다.
▲ 호주 땅을 영국령으로 선포한 제임스 쿡

"앞으로 이 땅은 대영제국의 영토!"

"이곳의 이름을
뉴사우스웨일즈(남쪽의 새 웨일즈)라 하겠다능."

그렇게 호주는 1770년부터 
영국이 영토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leonard_special-6
"야! 땅따먹기 참 쉽네."

moon_special-26
"그러게, 무조건 먼저 들어가서 
깃발 꽂으면 내 땅이던 시절."

이때 영국인들은 신기한 동물을
발견하고는 궁금했다.

"저기 얼굴은 개의 모양을 하고
커다란 토끼 귀가 달린 동물을 뭐임?"

"캥거루(모르겠어)."


● 죄수들의 땅이 되다 (1778)

쿡 선장이 호주대륙을 발견하고
수 년이 지난,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독립 전쟁을 한바탕하게 되는데
 

이때 영국은 죄수들을 가두던 감옥이 
미국 독립군에게 함락되자

난데없이 범인들을 가둘 
감옥이 시급해졌다.

moon_and_james-78
"아놔, 감옥이 털리다니,
새로 감옥을 지으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moon_and_james-76
"전쟁 통에 감옥 지을 
여유도 없는데 어쩌죠?"

"그렇다고 잡아들인 죄수를 
도로 풀어줄 수는 없는 일."

"급한 대로 영국에 실어가
임시로 지은 감옥에 수용하자능."

그랬는데 이번에는
런던 주민들이 주민들이 들고 나섰다.

"혐오 시설 건설 반대!"

"우리 동네에 죄수들을 수용할 수 없다."

때문에 영국 정부는 난감해졌다.

"으이구, 저넘에 지역 이기주의!"

"이를 어쩐담.."

moon_and_james-31
"혹시 뉴사우스웨일즈(호주)로 
죄수들을 보내는 건 어떤가요?"

moon_and_james-31
"지구 반대편이겠다.
도망칠 수도 없는 절해고도겠다."

당시만 해도 영국인들은 호주를 
웨일즈 지방 크기의 섬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죄수들을 먹일 음식은
배로 실어서 대야 하지 않나?"

moon_and_james-31
"뭘 그래요? 죄수들 스스로 
농사짓고 살라 하면 되죠."

"오호라! 굳 아이디어!"

그리하여 1787년 11척의 배에
1천여 명이 호주로 향하게 되는데

이중 778명은 남자 죄수였고
나머지는 감시병과 여자 죄수들이었다.

그리고 8개월의 항해 끝에, 
이들은 보터니 만에 닻을 내렸는데

막상 상륙하려고 하자
원주민들은 큰 소리로 외치며 배척했다.



"원주민들이 사납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하지만 그런 저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국인들은 배에서 내렸으니
내리고 보니, 

주위의 경관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모두들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moon_and_james-1
"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아! 이런 지상낙원을
죄수들의 감옥으로 삼아도 되는 건지.."


● 호주에 정착한 죄수들

하지만 죄수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으니,

죄수들은 대부분 농사 경험이 적은
떠돌이, 협잡꾼, 강도 출신들이었다.

"우리 보러 농사 지으라고?" 

 
"우린 그런 거 잘 몰라!"


게다가 이들을 감시하러 따라온 군인들도
농사는 도통 모르기 때문에

심은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수확량이 극히 적었고

moon_and_james-78
"아놔, 왜 다들 쭉정이뿐임?"

가지고 온 소와 양을 드넓은 땅에 풀어두면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moon_and_james-76
"앵? 다들 어디로 갔지?"

여기에 원주민들은 이방인 침입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해서 괴롭혔고

개중에는 원주민에게 붙들려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었다.

"애겅.."

그러면서 이들은 
배에 싣고 온 식량으로

30개월을 버티고 있었으니,
식량은 바닥나고
moon_special-19

모두들 절망 속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moon_and_james-72
"오, 주여!
정녕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그랬는데 30개월 뒤에
다시 죄수들을 실은 배가 도착했고,

james_special-4
"와! 배가 온다!"

 영국 관리인
"이번에는 죄수 222명과 
병든 여인들 수십 명."


뒤이어 식량을 실은 배가 도착해
다행히도 떼죽음을 당하는 비극은 면할 수 있었다.

james_special-11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어."

 영국 관리인
"자,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차근차근 따라 해 보라능."

그러면서 영국 정부는 
이런 당근책도 제시했다.

 영국 관리인
"모범수로 선정되면 즉시 석방해서
자유민으로 인정해줄 테고.

 영국 관리인
"나머지 죄수들도 형량의 2/3만 채우면 
모두 석방, 자유민!"

moon_special-2
"와!"

 영국 관리인
"자유민이 되면, 영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도 좋음."

moon_special-2
"와!"

하지만 자유가 된 죄수들 중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이는 거의 없었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여기도 좋은데
그냥 여기서 살지 뭐."


● 이주민의 쇄도

그렇게 호주로 온 죄수들은
19세기 중엽까지 약 80년 동안

총 16만 명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중 1/6 정도는 여성 죄수였다.
▲ 벌을 받고 있는 여자 죄수들

moon_and_james-53
"아놔, 여자가 너무 적다능. 
장가가기 힘들다능."

한편 죄수들의 
성공적인 정착 소식과

호주의 드넓은 대지와 
아름다운 경관이 널리 소문이 나면서

18세기 말부터 점차
자유 이주민이 건너오게 되는데,

"뉴사우스웨일즈가 그렇게
살기가 좋다며.."

"그래, 우리도 이민 가자!"

이들은 대부분 
농업 이주민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이주로 호주의 농업과 목축업은
크게 향상될 수 있었고

"보라고, 농사는 이렇게 짓는 거야."

또 이들이 싣고 온 가축들은
넓고 온화한 

천혜의 기후 덕분에 
엄청난 번식력을 과시하며 증가해,

현재 호주에는 양 1억 마리 이상
소 2500만 마리 이상이 살고 있다.

james_special-7
"하하하. 뭐 대충 풀어놓으면
알아서 쑥쑥 잘 크네."

때문에 이들 자유 이주민의 비율은
19세기 중엽이면 죄수들의 수보다 많아지고,

이때부터 영국으로부터
죄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후로는 자유민 출신자들이
호주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moon_special-28
"오늘날 죄수의 후손들은 
대략 2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능." ☞ 참고

하지만 영국의 죄수들과
자유 이주민들은

구대륙의 병균까지
고스란히 가지고 왔으니, 

이로 인해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호주 원주민들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천연두 등
각종 전염병으로 인해

30만 명이 넘던 인구가
100년 만에 80%가 줄어들어 

1920년경 겨우 6만여 명밖에 
남지 않게 된다.

▲ 호주 원주민 인구 추이 

moon_special-28
"원주민에 대한 인간 사냥도 있었지만,
그보다 혹독했던 것은 구대륙의 질병이었음."



호주 연방의 탄생

● 호주의 실체를 알다!

자유 이주민들로 인해
호주의 정착지는 계속 확대되어 갔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 사람들은 
호주가 얼마나 큰 땅인지를 잘 몰랐다.

육지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온통 사막과 황무지였으니

내륙에 대한 조사가 
쉽지 않아

그저 사람들은 호주를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며

막연하게 '큰 섬'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브리튼섬(영국)만큼
커다란 섬일 듯."

하지만 1803년, 탐험가 플린더스에 의해서
그런 통념이 깨진다. 
▲ 호주가 대륙이라는 것을 처음 발견하고, 호주의 명칭을 지은 매슈 플린더스

 플린더스
"내가 탐험해보니깐
거의 유럽 대륙만했음."

▲ 플린더스의 항해

leonard_special-30
"헐! 그렇게 컸음?"

 플린더스
"여긴 섬이 아님. 대륙이야!"

leonard_special-31
"하긴 예전에 그린란드 섬보다 크면 
대륙으로 하자는 조항이 있었지."

 플린더스
"그러니 뉴홀랜드, 뉴사우스웨일즈 
이런 명칭들은 무리가 있음."

 플린더스
"따라서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로 부르자능."

sally_and_friends-18
"읭? 그게 무슨 뜻?"

 플린더스
"오스트레일리아는 남쪽 땅을 지칭하는
라틴어 'australis'에서 따온 말임."

그래서 그때부터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나날이 이주민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내륙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호주는 동쪽 해안 가까이 
거대한 산맥이 동서를 나누고 있는데,

moon_special-27 
"이름하여, 그레이트 디바이딩(Great Dividing) 산맥.
동서로 분할(divide) 시키는 거대한 산맥이라는 뜻."

▲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

산맥 서쪽은 
'바람그늘 사면'이라

비구름이 형성되기가 어려워
날씨가 굉장히 가물었고

여기에 호주 대륙 중앙으로
'남회귀선'이 관통하고 있으니,
▲ 남회귀선이 지나는 곳에 아카타마 사막, 나미브 사막, 호주 사막이 있다

마치 사하라사막이나
아라비아 반도처럼

극심한 고온건조의
사막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 호주 내륙의 사막

moon_special-30
"이런 데서 어떻게 살라고.."

때문에 서쪽으로는 도저히 
진출할 수가 없는 자연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륙 땅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때문에 19세기 초부터 
내륙 탐사가 시작되게 되는데,
▲ 이때 낙타를 주로 이용했고, 덕분에 오늘날 호주에는 야생 낙타가 서식한다

내륙으로의 탐사는
혹독한 자연 때문에 쉽지 않았고

수많은 이들이 실종되거나 사망하는 등
잇달아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moon_special-36
"아놔, 지옥이 따로 없음.
가면 죽어!"

moon_special-40
"이건 뭐 화성 탐사도 아니고.."

결국 1858년 호주 정부는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게 되었으니
"호주 대륙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종단에 성공하면 2천 파운드를 주겠다능!"

moon_special-24
"헐! 2천 파운드!"
(당시 노동자의 평균월급이 3 파운드였을 때)

때문에 현상금을 노리고 
수많은 사람이 도전해보지만

역시나 모두 실패하고
1861년 한 탐사반만 겨우 성공하게 되는데

이들은 처음 떠날 때 
19명의 탐사반과

27마리의 낙타, 23마리의 말에
짐을 싣고 멜버른을 출발해서

천신만고 끝에 6개월 만에 
호주 북쪽 끝에 도착하게 되는데,

돌아오는 길은 훨씬 더 험난해서
낙타와 말을 잡아먹으며 걸었지만
 

모두 다 죽고, 오직 한 사람만이 
기적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 참고

moon_special-20
"나만 빼고.. 전원 사망!"

이렇듯 호주 내부는
죽음과 공포의 땅이었다.
▲ 시신을 발견한 원주민들

하지만 이듬해인 1862년에 
스튜어트란 사람은
 

거뜬히 호주 종단에 
성공하게 되는데,

그가 지나온 루트는,
호주 종단의 교과서적인 길로 인식되어

현재 그 길을 따라 
고속도로가 놓였다.
▲ 애들레이드 → 앨리스스프링스 → 다윈


● 유레카 봉기 : 자치권을 획득하다 (1854)

이렇듯 호주 대륙의 내부는
무시무시한 곳이지만,

그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머지 땅만으로도 

광활하고 온화한 기후 때문에
이민자들이 꾸준히 늘어났고

19세기 중엽부터 죄수의 수송이 줄어들더니
1868년부터는 완전히 끊겼다.

moon_and_james-71
"죄수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땅이라능!"

그런 시점에서,
이민자들을 더욱 늘어나게 한 사건은

1851년 호주 빅토리아에서 발견된 
'금'이었다.
▲ 빅토리아 주

moon_special-2
"헐! 금이다!"

때문에 호주에도
'골드러시 붐'이 불어닥쳤으니

moon_special-28
"미국, 캐나다, 호주 모두 
18세기 중엽에 골드러시 광풍이 일어난다능."

1852년 한 해에만 10만여 명이 
금을 찾으로 빅토리아로 몰려들어서
▲ 호주의 골드러시

이때 크게 성장하는 도시가
바로 '멜버른'이었다.
▲ 19세기의 멜버른

"북쪽에는 금광,
남쪽으로는 무역항!"

그리하여 1850년 
40만이던 호주의 인구는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하여
1860년 경 100만 명을 돌파하게 된다.
▲ 호주 인구 : 19세기 중엽 '골드러시'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당시 호주 정부는
금을 찾는 이주민에게는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정부
"땅을 소유하지 않으면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능."

광산업자는 물론 노동자들에게도 
과중한 세금을 메겼으니,

 정부
"노다지를 캐고 있으니,
당연히 세금도 그에 맞게 내야 하는 거 아님?"

 정부
"금을 찾든 못 찾든 관계없이
1인당 한 달에 1.5파운드를 세금으로 내라능!"

이는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처사였다.

moon_special-32노동자 
"젠장!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우리들에게
한 달에 무조건 1.5파운드라니.."

moon_and_james-24노동자
"선거권이라도 주면서 
이러면 몰라."


이때 아일랜드 출신의 한 이주민이
앞장서서 시위를 주동하는데,
▲ 피터 랠러 (1827~1889)

 랠러
"여러분 이렇게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랠러
"이 땅이 원래 주인이 있는 땅이더간요?"

"그건 아니지."

 랠러
"똑같이 이주해와 사는 처지에 
선거권도 안 주면서 세금은 무조건 내라니.."

 랠러
"이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옳소!"

그렇게 광산 노동자들의
시위가 시작되었고

무려 1만여 명이나 모여 
집단 궐기를 하게 되는데,
▲ 노동자들의 궐기

이는 당시 호주 성인 남성 인구의 
10%에 가까운 수치였다.

"당장 세금을 철폐하라!"

격분한 시위 군중은 
시내 유레카 호텔을 불사르고

멜버른 중심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하는데

이때 시위대가 불사른 호텔 이름을 따서
당시 사건을 '유레카 봉기'라고 부르게 된다.

 
"당장 세금을 철폐하라!"

"우리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하지만 시위에 맞선 영국군은 
강력한 대응으로 저지했으니,

"탕탕탕"

시위는 결국 
유혈 진압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노동자들의 요구는 거의 받아들여져서

월 1.5파운드의 
세금이 폐지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정부의 
호주에 대한 정책이 크게 변화하게 된다.

 파머스턴 (영국 총리)
"휴! 잠잠해져서 다행이라능."

"그래도 너무 강압적인 진압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파머스턴
"맞아. 세금을 함부로 징수하다 보면
식민지 주민들의 불만이 많아질 테고.."

 파머스턴
"그렇게 되면 미국 독립전쟁과 비슷한
사태로 번질 수 있겠다능."

 파머스턴
"호주가 어디야? 거긴 미국보다 훨씬 멀다고..
군대를 파병하는 것만도 엄청난 일인데."

그리하여 영국은 
호주 정부에 자치권을 대폭 확대하여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토록 
융통성을 주는 한편

외교권, 군사권, 해외 무역권만을 
영국이 행사하게 된다.

moon_special-28
"이렇게 자치권을 획득함으로써
호주는 절반쯤은 독립 국가가 되었다능."


● 연방의 결성 (1901)

19세기 후반 독일이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자

독일도 제국주의 노선으로 나서
해외 식민지 쟁탈전에도 끼어들었으니,

"나도 좀 먹자!"

별안간 호주는 
스스로의 방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moon_special-24
"헐! 이러다 독일이 
우리 땅에 눈독을 들이면 어쩌나?"

이때 뉴사우스웨일즈 총리가
주도적으로 나서 연방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1890년)
▲ 뉴 사우스웨일즈 

 파크스 (뉴사우스웨일즈 총리)
"영국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럴 때 독일군이 쳐들어 오면 속수무책입니다."

 파크스 
"결국 호주는 호주인 스스로 
지키도록 해야 하는데.."

 파크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개의 자치령으로 나뉘어 있는 호주를 
모두 하나의 연방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파크스
"뉴사우스웨일즈, 빅토리아, 퀸즐랜드 등을
모두 하나로 합치시다."

 파크스
"캐나다도 20여 년 전에 연방을 결성했는데, 
우리도 연방을 결성해야 합니다."

moon_and_james-3
"어!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염."

그렇게 해서 연방 결성을 위한
협의회가 조직되고 헌법 초안이 작성됐다.

 파크스
"됐어. 이젠 연방 수립만 선포하면 될 듯."

moon_special-27
"그래서 헨리 파크스는 
호주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능."

▲ 호주의 건국의 아버지 '헨리 파크스'

그랬는데, 파크스는 1896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190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호주 연방을 인정하면서
▲ 빅토리아 여왕

1901년 1월 1일 호주의 6개 식민지는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되게 된다.

moon_special-2
"만세!"

그렇게 연방이 만들어지자, 이제 남은 일은 
수도를 어디로 할지에 대한 결정.

brown_and_cony-19
"다연히 시드니가 
수도가 되어야지?"

brown_and_cony-67
"무슨 소리? 
멜버른이 정치의 중심지야!"

결국 호주의 수도 역시,
다른 연방국가들의 수도가 그러했듯이

양대 도시 시드니와 
멜버른의 중간 지점인

'모나로-타펠랜드'라는 
지명의 도시로 결정되게 되는데,

brown_and_cony-69 
"아놔, 이거 발음하기 너무 어려워.."

brown_and_cony-19
"그러면 원주민의 호칭인 
캔버라로 하자."

brown_and_cony-83
"응, 그래."

나중에 알고 보니 
캔버라는 '젖가슴'이라는 뜻이었다.
▲ '캔버라'는 산의 모양이 젖가슴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었다


● 백호주의 (White Australia Policy)

18세기 중엽, 금이 발견된 이후
폭증하기 시작한 인구는 

1860년 100만, 
1880년엔 200만을 넘게 된다.

brown_and_cony-8 
"20년 만에 인구가 두 배 증가.."

이때 골드러시와 함께 값싼 노동력으로
중국의 '쿨리(노동자)'가 대거 호주로 밀려드는데,

당시 늘어난 이민자들 중 
10%가 바로 중국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금광에서 일해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안고 
호주로 왔건만,

백인 우월주의로 가득 찬
영국인들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로 인해

호주연방이 탄생하면서 
호주 정부는, 

유색인종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게 된다.

"더 이상 중국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이주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능."

▲ 당시의 카툰 : 중국인과 엮이면 모든 나쁜 일이 벌어진다 ☞ 참고

이후 호주의 '백호주의'는
무려 74년간이나 계속되면서

호주는 철저한 '인종차별국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moon_special-26
"뭐 영국 식민지들이 대부분 다 그렇지."

moon_special-28
"남아공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 분리 정책이 버젓이 행해졌었고.."


그렇다면 외부에서 유색 인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내부의 유색 인종은
어떻게 됐을까?
sally_and_friends-18

사실 백인들에게 중국인들은 
적어도 인간 취급을 받았지만

원주민(애버리지니)은 그야말로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었으니,

백인들은 백인 문명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원주민을 생포해서
마구 격리 지구로 보냈는데,

"원주민들은 저능해서
백인 문명과 섞이면 안 됨!"

"원주민들을 무인도나 황무지로
이주시켜 버리자!"

이런 과정에서 학살이 
수없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종청소를 
'블랙 워(black war)'라고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는 
'테즈메니아 인종청소'로 (1800~1830)

당시 백인들은 2천여 명이 무장하여 
몇 미터 간격으로 늘어서서

마치 머리빗질하듯 
속속들이 뒤져서 원주민들을 생포하고

생포된 원주민들은 모두 
인근의 플린더스 섬으로 강제 이주시켜 버렸다.

james_special-8
"이로써 살기 좋은 테즈메니아 섬은 
모두 우리 차지. 하하하."

이후 이러한 '블랙 워'는
19세기 중엽 '원주민 보호법'으로 제도화되는데,

말이 '보호법'이지,
실질은 '인종청소'였다.

james_special-37
"원주민들을 모두 
보호지구로 격리시켜 버리자!"



호주의 독립과 성장

● 1차 세계대전의 비극 : 앤잭(ANZAC)

호주의 백인들은 이처럼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자신들만이 고귀한 인종인양
땅을 독차지하며 살고자 했지만,
moon_and_james-79

영국 본토인들이 보기에 그들은 
엄연히 대영제국의 신민들이었으니,

1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불어오자
호주의 청년들은 

영국의 전쟁을 위해 
강제로 징집을 당해야만 했다.

이때 징집된 호주와 뉴질랜드군을 합해
앤잭(ANZAC)이라고 하는데

'호주-뉴질랜드 군부대'의
앞자리를 따서 부른 명칭이었다.

(Austrailia)
NZ (New Zealand)
AC (Army Corps)

당시 앤잭은 33만 명이 징집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호주·뉴질랜드의 성인 남성 인구의 1/4였고,

그중에 2/3가 넘는
22만 6천여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게 된다.

moon_special-24
"헐!"

당시 앤잭이 참여했던 
가장 유명한 전투가 갈리폴리 전투였다. (1915)

갈리폴리반도는 
흑해와 지중해를 관통하는 길목에 있는데,

이곳을 장악해야만 연합군의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어서

동맹국인 터키와 독일 병사들은 
참호를 구축하며 방비하고 있었고

연합군인 영국과 프랑스 병사들을
이를 뚫기 위해 상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총알받이'로 쓰였던 병사들 중
상당수가 앤잭부대였던 것이다.

 처칠
"맹렬한 함포 사격으로 
터키군의 진지를 박살 낸 뒤에.."

 처칠
"그 다음에 병사들을 
상륙시키는 거야."

하지만 상륙 작전은
지금까지 보도 듣도 못한 처참한 살육전이었으니,

시체가 산을 이루고 핏물이 강을 이뤘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두두두두두.."

"뜨아!"

무엇보다 당시 돌격전은
융통성이 전혀 없었다.

상부에서는 전방의 상황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저 돌격 명령을 내렸고,

돌격 신호가 떨어지면
병사들은 뻔히 죽을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 사선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돌격 앞으로!"

그렇게 앞선 조가 뛰쳐나가면
다음 조가 대기하고

또 다음 조가 뛰쳐나가면
기계적으로 다음 조가 대기하면서

차례로 죽는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 영화 '갈리폴리'의 장면

결국 연합군은 상륙작전에 실패하고
철수하고 마는데

이때 연합군 55만 명의 참전자 중 
절반이 죽거나 다치는 손실을 입게 되었고,

앤잭은 3만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낳게된다.

moon_special-30
"뜨아!"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희생은
인구가 희박한, 

호주와 뉴질랜드 국민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으니..

james_special-30
"유럽인들의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이 
10만 명이 죽고 13만 명이 부상을 당했음."

james_special-25
"전체 인구의 3%."

james_special-28
"영국은 우리에게
그런 희생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이때부터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진정한 자주 국가로 태어나야 한다는
의식이 크게 싹트기 시작했고,

james_special-32
"독립!"

갈리폴리 전투가 발발했던 4월 25일 
'앤잭 데이'라고 해서 매년 이를 기념하고 있다.

moon_special-28
"앤잭 데이는 호주, 뉴질랜드 두 나라의
최대 기념일이자 추모일이고,"


moon_special-28
"갈리폴리 전투는 호주,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새로운 각성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음."


● 2차 세계대전의 승리 : 앤저스(ANZUS)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영국은 또다시 호주의 참전을 요청했다.

 영국 
"당연히 도와줄 거지?"

moon_and_james-76호주 
"아놔.."

하지만 1차 대전의 상처로 인해 
많은 국민이 참전에 반대했다.

때문에 정부는 국민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영국이 망하면
이땅은 나치로 물들게 될 겁니다."

"우리도 '대영제국회의'의 일원입니다.
영국과의 동맹관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호주는 또다시
참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당시 일본은 
유럽의 열강이 떠난 공백을 틈타

재빨리 동남아 일대로 쳐들어가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1941년 6월 인도차이나(프랑스령)를 점령하더니
그해 12월 진주만을 기습하고,

1942년 초에는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영국령)을 점령하게 되는데

이때 영국군 대신 싱가포르를 지키던
호주군 1만 5천 명이 모두 포로로 붙잡히게 되었다.

moon_and_james-13
"뜨아!"

그러더니 며칠 후 일본군은 
호주 북부를 공습해, 호주 침략을 예고했다.
▲ 폭격 당한 호주의 다윈

moon_and_james-11
"헐! 올 것이 왔다능."

james_special-28
"일본군의 상륙이 곧 시작될 거라능."

당시 호주인들이 느껴던
공포는 상당했다.


james_special-26
"아놔, 일본군의 상륙을
대체 무슨 수로 막는담."

그러나 그해 6월 미국이
미드웨이 해전으로 반전에 성공하면서

태평양의 주도권은 
미국으로 쏠리게 되어

호주를 점령하려던 일본의 야심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미국의 반격에 호주군도 합세해서
동남아 일대에서 일본군을 몰아내게 된다.

그리고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면서,

태평양 전쟁은 막을 내리고
호주는 승전국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moon_special-2
"만세!"

하지만 당시 호주는 100만 명을 
동남아, 유럽, 북아프리카에 파병하여

태평양 전선에서 
3만여 명이 사망하고
▲ 포로수용소의 호주 병사

유럽 전선에서는 
1만여 명이 사망하여

도합 4만여 명이 
사망하고 말았는데,
▲ 2차 대전 희생자 묘지

이는 당시 700만 호주 인구 중 
0.6%에 해당하는 수치였고

성인 남성 인구 중 
2%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하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호주는 한층 더 깨달은 게 있었으니,

james_special-33
"멀리 떨어진 영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능!"

james_special-38
"앞으로는 영국보다는 
현실적으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james_special-32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겠다능."


그래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는 

전통의 영국을 점차 멀리하면서,
급격히 '친미국가'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james_special-8
"미국이 짱이라능."

때문에 2차대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방위를 위해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동맹을 맺었으니,
이 조약을 앤저스(ANZUS)라고 부른다.


A : Astrailia
NZ : New Zealand
US : USA

그리하여 
베트남 전쟁 때에도 호주는

한국 다음으로 많은, 
5만여 명의 호주군을 파병하게 된 것이다.
▲ 베트남 전에 참전한 호주군


● 원주민의 눈물 : 도둑맞은 세대

2차 대전 이후로 호주는 
적은 인구를 커버하기 위해

james_special-38
"겨우 700만 명의 인구로는 
발전하기 어렵다능!"

대대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여

1965년까지 20년 동안 
300만 명의 이민자를 정착시키는데

이들은 절반은 영국 출신이었지만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유고 출신도 많이 들어왔는데, 

moon_special-26
"물론 전부 백인들.."

그러다 보니 영국적인 색채가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으니,
▲ 호주에 도착한 네덜란드 이민자들 (1954년)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
권위적이던 영국식 스타일이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와 곁들여지면서
과거의 형식과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다원화 사회에서
유색 인종은 배제되었고

특히 원주민은, 마치 '불가촉천민'인양
철저한 배격대상이었다.

moon_and_james-18
"에잇! 원주민은
도시에서 당장 나가랏!"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혼혈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었으니,

인종분리 국가인 호주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주민 부모에게서 태어난
혼혈 자녀를 원천적으로 떨어뜨리는 

희대의 정책을 
생각하게 된다.

"인구도 부족한데 혼혈아를 배격할 수 없고, 
이들도 백인 사회에 받아들이죠."

"그렇게 되면 혼혈아의 부모 중 한사람인 원주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그건 좀.. 그러면 혼혈아들을 
강제로 떼어놓도록 하죠."

"그거 좋은 생각이요."

"원주민 손에 자라는 
혼혈아들을 떼어놓아,"

"백인 가정에 입양시키거나 
백인 양육기관에 맡깁시다."

그리하여 1901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무려 70여 년 동안,

혈육을 강제로 떼어놓은 
희대의 비인간적인 정책이 실시되게 된 것이다.

"내놔!"

혈육과 생이별을 하고 
고아 아닌 고아로 입양되어 자라는 혼혈아들을

그래서 호주에서는
'도둑맞은 세대'라고 부른다.

"도둑맞은 우리 아이들.."

그러나 이런 혼혈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점차 목축업, 농업에 진출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자,

1975년부터 원주민 분리정책은
철폐되게 되고

유색인종에 대한 이민도
전면 허용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오늘날 원주민들의 대부분은

저학력, 저임금에 시달리며
실업자와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고

알콜중독에 빠져
폐인이 된 경우가 많다.


● 오늘날의 호주

호주는 우리나라의 77배나 되는 면적에도
인구는 45%에 불과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대부분 해안의 도시에만 
집중 거주하고 있는데,

전 국토의 5% 해안가에
인구의 90%가 모여 살고 있다.
▲ 노란색 부분에 호주 인구의 2%가 산다 (45만명)

moon_special-26
"뭐 그렇더라도, 그렇게 모여사는 사람들 수준이
우리나라 인구밀도의 10% 정도."

반면에 국토의 70%가 
사막, 바위, 잡초 투성이의 오지다.

moon_special-28
"땅은 미국 본토만한데 (알래스카 제외)
경작지 면적은 미국 본토의 1/4 수준."

그런데 그런 오지 속에서도
우리나라 면적의 17배나 되는 땅에

거대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으니,
바로 '대찬정분지'다. 
(대찬정 大讚井: 크게 뚫린 우물)

moon_special-27
"땅 속으로 500~1000m를 파면
거대한 지하수가 나온다능."


때문에 최근엔 이곳을 개발해
내륙 깊숙한 부분까지

밀을 재배하고 
양을 사육하고 있다.
▲ 대찬정의 물

한편 호주는 
내륙도시가 발달하지 않은 탓에

철도를 놓는 것이 경제성이 없어
트럭 운송이 주를 이루는데

때문에 호주에서는 트럭에 짐칸을 여러 개 단 
'로드 트레인'을 흔히 볼 수 있다.
▲ 호주의 로드 트레인 : 호주는 도시를 벗어나면 포장도로가 많지 않다. (도로포장률 : 38% 정도)

한편 2차대전 이후 호주는 
영국보다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70년대 중반 이후로는
백호주의를 버리고

아시아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니,

때마침 월남 패망으로 발생한
수많은 '보트피플'들이 호주로 이민을 갔고
▲ 호주에 도착한 베트남 보트피플

우리나라도 13만 명이나 이주를 해서
2차대전 이후로만 보자면,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 번째로 이민을 많이 간 곳이 된다.

moon_special-28
"우리나라는 특히, 최근에 호주 이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능." ☞ 참고

그러면서 인종차별도
많이 완화됐으니

최근엔 오히려 서구 국가들보다
인종주의가 약화된 편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된 태도의 한 요인은,
최근 '아시아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그만큼 아시아를 보는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moon_and_james-44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특히 호주의 수출에서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육박하고 있으니,

20세기 전반 영국,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이제는 '동아시아'가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한 것이다.

▲ 2012년 호주의 수출 대상국 ☞ 참고

moon_and_james-88
"인종차별 우리는 그런 거 없다능!"

moon_and_james-86
"축구도 아시아에 가입됐으니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고 싶다능."

▲ 아시안컵 축구에서 우승한 호주

그런가 하면 호주는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세계 석탄 1위, 
철광석 2위를 비롯해서

원유, 천연가스, 니켈, 금 등의
천연자원들이 주요 수출품인데,
▲ 호주 수출품의 절반 이상을 광물이 차지하고 있다 (진한 갈색)

moon_and_james-5
"아놔, 부럽네."

산업 전체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겨우 6.8%에 불과하지만

수출의 절반 이상을
광물 자원이 해결해주기 때문에
▲ 호주의 노천 석탄 광산 : 갱도가 필요없다. 포크레인으로 파서 트럭에 싣는다.

오늘날 호주는 1인당 소득 5만 불 이상의
세계적인 부국이 될 수 있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