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List

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역사 상식파괴 :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언은 유럽에서 건너왔다.

● BC 10,000년 전 북아메리카 대륙

지금으로부터 13,000년 전 지구는 
막바지 빙하기에 있었다.

당시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 대부분은 빙하로 덮혀있었다.
▲ 하얀색이 빙하. 당시 캐나다는 전부 빙하였다.

이때 인류는 지구상에서 아메리카 대륙만 빼고
모든 대륙에 퍼져 살고 있었다.

그때까지 북아메리카에는
거대 포유류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 키 4.6m, 무게 최대 9톤에 이르는,
매머드 종에서도 가장 크다는
콜롬비아 매머드가 살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낙타도 살고 있었다.
원래 낙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해서
이후 중동지역으로 이동한 동물이다.

또 덩치가 소형차만한 나무늘보도 살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포식자들도 살고 있었으니,
검치호의 일종인 스밀로돈을 비롯해서

오늘날의 회색곰보다 몸집이 두배나 더 큰 
쇼트페이스 안경곰,

무리를 지어 다니며
대형 포유류 등을 사냥하고 다니던 다이어늑대
같은 맹수들도 있었다.

비록 빙하기 막바지이기는 했으나,
당시 북미 대륙은 1년 중 2/3는 영하의 기온이던  
척박한 곳이었다.

그런 거칠고 낯선 땅에 
또 엄청난 괴수들이 도사리고 있던 미지의 대륙에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만 3천년 전 처음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이들을 우리는 흔히 '원시 인디언'이라고 부른다.

혹시 원시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미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들 역시 오늘날 인류와 지능과 능력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는 동일한 현생인류였다.


● 원시 인디언들의 매머드 사냥

기원전 만년 전의 원시 인디언들은 
기본적으로 채집생활을 했다.

큰 동물, 작은 동물 닥치지 않았다.

원시 인디언에게 있어 세상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눠졌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구해서 먹었다.

과일, 도토리, 뿌리 채소부터 시작해서
개구리, 거북이, 사슴 등을 비롯해서
매머드와 같은 대형 포유류 사냥도 마다하지 않았다.
▲ 열매와 덩이줄기

사실 당시가 기원전 만년 전 쯤이니깐,
현생인류가  매머드를 사냥한 지도 
어언 10만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연히 원시 인디언들은 
매머드 사냥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 사람과 매머드의 크기 비교

또 정교한 무기와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날카롭고 뾰족한 돌이 달린 창이었는데,
이는 뉴멕시코 클로비스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했다고 해서
흔히 '클로비스 뾰족돌'이라고도 한다.

제작 과정은 이러했다.

먼저 흑요석을 골라서 
돌망치나 동물의 뼈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내리쳐서 

납작한 석기를 만든다.

그리고 납작해진 석기의 양쪽 모서리를 
날카롭게 갈아서 얇고 평평하게 만든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뾰족돌이 생기는데..

뾰족돌이 완성되면 
아랫쪽에 망치질을 해서 얕은 홈을 팠다.

이렇게 얕은 홈이 필요한 것은
뾰족돌을 막대 끝에 밀어넣기 위해서였는데,
이 홈 덕분에 뾰족돌은 단단하게 고정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날카로운 돌창은
사냥을 떠나는 원시 인디언들의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파워를 배가시켜 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투창기였다.

바로 이렇게 생긴 것인데..

한쪽 끝에는 손잡이가 있고 다른 쪽 끝에는 돌기가 나 있다.
이런 돌기는 창과 맞아야 했다.

그리고 이런 투창기로 창을 쏘면
시속 100km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투창기의 성능이 개선되고
뾰족돌이 더 날카로워 지면서
원시 인디언들의 매머드 사냥은 보다 쉽고 안전해졌음은 물론이다.

한편 매머드 사냥 방법은 이러했다.

사냥꾼들은 여러명 무리를 지었으며

매머드 무리를 유심히 관찰하고 
주로 협곡을 공격지대로 삼았다.

이때 한 두마리만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샘, 개울처럼 물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도망치기가 힘들게 된다.

매머드 유골에서
여러 방향에서 날라온 무기의 흔적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사냥꾼들은 포위공격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호와 함께 사냥꾼들은 모두 동시 공격을 하고
창들이 날아가 매머드를 맞추면
통증으로 매머드는 길길이 날뛰었을테고

원시 인디언들은 재빨리 도망을 치다가
매머드가 서서히 죽어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매머드가 죽으면
곧 주위는 원시 인디언들의 새로운 거주지가 됐다.


● 원시 인디언(클로비스 인디언)들의 삶

사냥이 끝났다.

사냥꾼들은 온 부족이 먹어도 남아돌만큼 
풍부한 고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매머드 사체 주위로
원시 인디언들은 야영지를 만들고 
모두가 모여 고기를 포식했다.

매머드는 무겁기 때문에 이걸 옮길 수는 없었다.

때문에 당시 인디언들은 매머드를 사냥하면
바로 그곳이 새로운 거주지가 되는 형식이었다.

당시 원시 인디언들은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쓸 수있는 자원은 모두 이용을 했다.

가죽은 옷을 지어서 입고,
뼈는 망치같은 도구를 만들고,
고기는 식량으로 사용하고..

뼈를 잘라서 골수를 먹기도 했다.
이런 골수는 영양분이 특히 풍부했다.

당시 이렇게 모여살던 집단은
대략 한 무리가 20명 정도의 규모였다.

이들은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알았겠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야영지 주변을 마구 뛰어다니고
무기나 도구같은 것을 아무데나 어질러서
어른들한테 야단을 맞았을 것이고..

그러다가 아이들도 때가 되면 
뾰족돌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수렵이나 채집을 하게됐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며
사냥용 무기를 만드는 법, 불을 꺼트리지 않는 법,
아이 돌보는 법 같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한편 이들이 사용했던 뾰족돌은 
매머드만 사냥할 때 쓰였던 것은 아니었으니..

거북이의 등 껍질을 떼어낼 때도 썼고,
식물을 채집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원시 인디언들은 덩치 큰 동물만 사냥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적지에서는 사슴, 순록, 거북이, 토끼 
그 외에도 여러 동물을 사용한 흔적들이 나오고 있다.

밤이 되면 이들은 커다란 모닥불을 피웠고
주위에 앉아 웃고 농담을 하고 서로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수렵 채집 생활을 했던 선사시대의 인류 역시 
리들처럼 사회성이 좋았다.

아마 남자들은 허풍을 써가며 
자신의 무용담을 떠벌렸을 것이다.


● 위험한 맹수, 스밀로돈

사냥은 모두 끝났지만 
모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야영지에서 반경 150m 안의 육식동물들은 
모두 고기를 냄새를 맡고 몰려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13,000년 전 북아메리카에 살던 육식동물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그중에는 검치호랑이의 한 종인 
'스밀로돈'도 있었다.

스밀로돈은 오늘날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고양이과 동물들의 조상이기도 하다.

다 자란 스밀로돈의 몸집은 지금의 사자와 비슷했다.
몸무게는 200kg은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길이가 18cm에 달하는 송곳니가 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크기의 곰과
떼지어 다니는 사나운 늑대들은 늘 무서운 맹수들이었다.

당시 어떤 동물이 살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지가 있는데,
바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타르 웅덩이다.

타르 웅덩이는 나무 잎 등으로 덮여 있어서
자칫 동물들이 빠지기 십상이었는데,

그러다가 어느날 매머드 한마리가 운이 나빠서
이곳을 밟았다고 쳐보자.

그러면 매머드는 바둥바둥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빠져나올 수가 없어 꼼짝없이 죽게된다.

그러면 곧 스밀로돈 같은 
육식동물이 '공짜 고기'의 횡재를 맛보기 위해 
매머드 등 위로 뛰어오른다.

이런 식으로 매머드를 공격하는 동물들은 더 많아지고
타르 웅덩이는 모두를 가둬버린다.
 
결국 매머드를 공격하던 육식동물들도 모두
타르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만년 뒤에는 타르 웅덩이였던 곳은
그야말로 훌륭한 화석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타르 웅덩이 화석의
90%정도는 육식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고기를 먹는 
개과, 고양이과, 곰과 동물의 화석이다.

모두 매머드 사체의 공짜 고기를 먹으려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그만큼 매머드 사체를 주위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늘 맹수들의 위협을 각오해야 하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인디언들은 
굶주린 맹수가 매머드를 훔쳐갈까봐,
혹은 사람을 먹잇감으로 덮칠까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으리라.

물론 그러다가
때로는 맹수에게 잡아먹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럴 때면 당시 인디언들은
시신을 땅에 묻는 대신에 나무 같은데 올려놓았다 한다.

땅이 얼어서 삽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원시 인디언은 어디에서 왔을까?

원시 인디언들은 이동 생활을 했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면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사는게 힘들기 때문이다.

사냥할 짐승이나 딸 열매가 바닥나면 
곧 다른 데로 가야했다.

원시 인디언들의 이동이 잦았다는 것은 
고고학 유물에서도 나타나는데..

원시 인디언들이 만든 창촉, 클로비스 뾰족돌은 
북아메리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무려 미국의 동부 해안에서도 뾰족돌은 발견된다.

오히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클로비스 뾰족돌이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은 동부 해안지역이다.

워싱턴 DC 도시의 반경 100km 안에서만 
400여개의 유물이 발견될 정도다.
반면에 미국 서부에는 다 합쳐봐야 수십개에 불과하다.

즉 당시 인디언들의 주된 활동 영역은 동부였다는 얘기다.

어라?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아메리카 인디언은 시베리아를 통해
이주해 왔다는게 전통적인 학설인데,
왜 굳이 머나먼 동부해안까지 와서 살게된 것인지?

기존의 학설은 이랬다.

빙하시대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낮아서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이어주는 베링 육교가 존재했고
이곳을 이용해 아시아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

특히 기원전 만년 경에는
캐나다를 뒤덮었던 빙하는 녹기 시작하는데,

이때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아시아인들은
북미 서부의 남쪽까지 이동했다고 학자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클로비스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건너왔다면

미국 동부해안에 
뾰족돌이 몰려있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연 원시 인디언들은 시베리아에서 이주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화석 유물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이게 클로비스 뾰족돌이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뾰족돌 제조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시베리아 뾰족돌은 
가는 홈에 작은 날을 박아놓은 형태였고
고고학자들은 이 기술이 3만년전부터 존재했다고 추정한다.
▲ 좌 : 시베리아의 뾰족돌, 우 : 클로비스 뾰족돌

오히려 클로비스 뾰족돌과 비슷한 양식의 유물은
유럽에서 발견이 되고 있다.

프랑스 남서부에서 발견된 솔리트레 뾰족돌들은
형태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 좌 : 클로비스 뾰족돌, 우 : 유럽 뾰족돌

다만 막대기에 끼워넣을 홈만 보이지 않는 정도다.


●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언은 유럽에서 건너왔다

유럽의 뾰족돌이 북미의 것과 거의 같다는 점은
원시 인디언 문화에 새로운 학설을 내놓게 됐다.

물론 그 동안의 상식을 단번에 깨는 이론이라,
발표 즉시 학자들의 논쟁과 반발을 
일으켰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부정하는 학자들의 요지는 이랬다.

 부정론자
"아니, 자다가 봉창 터지는 소리도 아니고
무슨 구석기인이 
대서양 같은 커다란 바다를 건넌다는 말입니콰?"

하지만 긍정하는 학자들은 
프랑스 마르세유 동굴 벽화를 반론으로 제시한다.

당시 유럽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자신들의 사냥감을 벽에다가 그리곤 했는데,
▲ 들소

그중에는 들소, 사슴, 말과 같은 육상동물도 있지만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심해어류도 보이기 때문이다.
 
▲ 바다표범과 심해어류
즉 당시 유럽의 구석기인들은 
해양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로 유럽의 어부들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간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또 배가 있으면 인간의 이동은 180도 달라진다.

왜냐하면 배가 있으면 
바다, 호수, 강은 장벽이 아닌, 
고속도로가 되기 때문이다.

배를 만드는 기술만 있으면 
오히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선사시대 인류가 호주로 이주하게 된 것도
실은 배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4만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가하면 기원전 만년 경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낮았고,
북대서양에는 거대한 빙하가 존재했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 하얀 부분은 빙하로 얼어붙은 부분이라, 겨울에는 걸어다닐 수도 있었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시 유럽의 사냥꾼과 어부들은
해변을 덮은 얼음을 이용해 바다표범 사냥을 하곤 했다.

바다표범은 얼음에 숨구멍을 뚫어놨을 것이고..
사냥꾼은 그곳에서 
바다표범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얼음 해변을 따라 
구석기인들은 이동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는 
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배는
나무로 골격을 잡고 동물가죽으로 선채를 감싼 형태였다.
여기에 20여명 정도가 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얼음 해변을 따라 
바다표범 사냥을 하다보면, 
결국 어느새 북아메리카의 해안까지 이르게 된다.

당시는 해수면이 낮았기 때문에
캐나다 남동부에 자리잡은 대륙붕 그랜드뱅크스는
물 밖으로 드러나 있었는데..
 
그랜드뱅크스까지만 오면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결국 이런 식으로 유럽의 구석기인들은
북아메리카 동부해안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오늘날 인디언에게는 왜 유럽인의 생물적 특징이 없는가?

하지만 아직도 여러 과학자들은 
이런 이론에 딴지를 건다.

 부정론자
"그렇다면 오늘날 인디언들의 외모는
왜 유럽인들과 다른 겁니콰?"

 부정론자
"유전적 특징은 남아있어야 하잖아요?"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왔던 유럽의 인디언들은 
모두 멸종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멸종은 순간적인 일이었다.

고고학적인 증거로 보면
클로비스 문화를 일군 원시인디언들의 흔적은 
어느날 갑자기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토양의 지층을 보면 그 흔적들이 나오는데,
대략 이러하다. (북미의 한 연못가 지층 표본)

지표면 바로 아래 어두운 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11,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쌓인 토양이다.

그리고 거기서 60cm 정도를 내려가면
원시 인디언들이 살았던 
13,000년 전의 토양이 나온다.

중간에 2천년 동안 밖에 안되는 짧은 시기에
엄청 많은 토양이 쌓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 수수께끼의 해답이 있다.

2천년 사이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문제를 제대로 살펴 보려면
기원전 만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봐야 한다.

기원전 만년전 선사시대 인류는 
전대미문의 급격한 기후변화를 맞게 된다.

당시 미국 동부에는 
지독한 모래 폭풍이 쉬지 않고 몰아쳤다. 

사연은 이렇다.

만 5천년 전만해도 북미 대륙에는 
엄청난 크기의 빙하가 있었다.

시쳇말로 오늘날의 남극대륙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만 5천년부터 빙하기가 서서히 풀리더니
북미 대륙은 점차 따뜻해져갔다.

기온이 올라가자 풀은 무성해졌고
거대 포유류들은 살기가 좋아졌고,
이러한 때 인간도 정착하게 된다.

그랬는데 갑자기 기원전 만년 경 (정확히는 BC 10,900년경)
계속 따뜻해질 줄 알았던 기후는
엉뚱한 방향으로 치우쳤고

다시 북미대륙은 혹독한 빙하기로 바뀌게 된다.

이때 형성된 거대한 빙하 때문에
북미 대륙의 북쪽은 강력한 고기압을 형성하게 되었고

무려 1000년 동안이나 춥고 황량한 모래폭풍이
북미 전역을 쓸고가게 된다.

때문에 2천년 동안 쌓인게 
최근 11,000년 동안 쌓인 양보다 많았던 것이다.


● 갑작스런 빙하기, 어린 드리아스기

당시 북반구에 갑작스레 찾아온 빙하기를 지칭하여,
어린 드리아스기(Younger Dryas)라고 한다.

'드리아스'는 당시 번성했던 꽃을 지칭하여 명명한 것인데,
지금은 북극권에만 자생한다.

당시 기후 변화를 보면, 
그 정도를 실감할 수 있다.

불과 1천년만에 지구 북반구 기온이 
무려 10도 이상 내려가게 된 것이다.

고고학에서 1천년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인데
그 사이 기온이 10도나 하강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기후변화'였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런 급격한 기후변화는 
동식물과 인간에게 모두 커다란 충격이었다.

기온은 갑자기 춥고 건조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바람이 
바짝 마른 토사를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엄청난 모래폭풍이 몰아쳤고 
땅은 곧 불모지가 되어버렸다.

환경에 적응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선사시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했던 동네는
북아메리카 동부지역과 유럽지역이었다.

갑자기 대양의 해수의 순환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해수의 순환은 지구 곳곳에 열 에너지를 나눠주는데,
메카니즘은 이렇다.

적도 부근에 바닷물은
북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수분의 일부가 증발하는데,
이때 소금은 남는다.

따라서 해류가 북대서양 부근에 도달할 무렵이면
바다물의 염도는 상당히 높아진다.

당연히 밀도가 큰 짠물은 
바닷속 깊이 가라앉게 되는데..

그 여파로 심해해류가 발생해서
북쪽의 차고 짠물은 
곧 남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적도 부근까지 오게되면
다시 바닷물은 뜨겁게 덥혀지고
북쪽으로 바닷물이 흘러가게 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해류의 순환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해류가 순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위도 지방은 저위도 지방의 열 에너지를 받지 못해 
기온이 뚝 떨어지고 
그 결과 기후는 급격히 변하고 만다.

이런 현상은 빙하가 
해양으로 대거 유입될 때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표층의 바닷물이
밀도가 낮은 담수로 채워지기 때문에
물이 심해로 가라앉는 과정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심해해류가 발생하지 않아
더 이상 해수의 이동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으면
유럽에서 빙하기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만년 전 
북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당시 북아메리카에 있던 빙상이 
갑자기 대거 북대서양 쪽으로 유입되고 마는데,

원래 북아메리카의 빙상은 서서히 녹으면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멕시코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정상 루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BC 만년전 쯤 
엄청난 양의 빙하가 
북대서양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북대서양의 바다에는 
담수가 대거 유입되었고

바닷물이 더 이상 밑으로 침강하려고 하지 않게되니,
곧 심해해류도 없어지게 된 것이다.


● 대멸종과 클로비스 인디언의 종말

북대서양은 열에너지 분배를 중단하게 됐고
고위도 지방은 저위도 지방의 
에너지를 받지 못하게 됐다.

지구 곳곳에서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북유럽의 숲은 툰드라 지대로 바뀌었다.
아시아에서 발생한 모래폭풍은 
엄청난 양의 토사를 공중에 띄웠다.

북반구에서는 다시 빙하가 확장되고 
엄청난 양의 담수는 다시 얼음으로 변했다.

북아메리카의 기온은 극도록 차고 건조해졌다.

미국 동부에는 차가운 모래바람 때문에 
동물들은 숨쉬기 조차 힘들어졌다.

그런 먼지 구름이 
근 1000년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니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대기를 채우자
곧 식물들은 광합성을 못해 죽었다.

그러자 대형 초식동물들이 따라 죽었고
육식동물들도 운명을 같이 했다.

북아메리카에서만 30종의 동물이 멸종한다.
특히 대형포유동물 중 80%가 멸종한다.

매머드, 스밀로돈, 다이어늑대 등은
모두 이때 멸종하고 만다.

멸종된 것은 큰 동물만이 아니었다.

토끼와 스컹크도 몇종류 멸종됐고
가문비나무의 한종도 멸종됐다.

당시 클로비스 인디언들의 운명은 어땠을까?

애석하게도 클로비스 인디언들의 뾰족돌은
이때를 기점으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유물을 뒤져도 
12,900년 이후로 만들어진 유물은 
하나도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어린드리아스기는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언이었던,
클로비스 문화를 쓸어버린 것이다.


● 왜 '어린 드리아스기'는 발생했을까?

BC 만년전 북미에서 발생한 대규모 멸종사태를 두고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여왔다.

 부정론자
"무슨 기후변화 때문에 동물들이 멸종됐다는거임?"

 부정론자
"그동안 빙하기만 최소한 20번은 더 왔다갔다 했는데
매머드는 잘만 버텨왔는데.."

맞는 말이다.

확실히 기후 변화만으로 
대형동물들이 멸종했다는 말은 비약적인 논리다.

과학자들은 기원전 만년 전 발생했던 아래의 3가지 상황을
모두 명쾌하게 설명하는 해답을 원하고 있다.

 클로비스 문화는 왜 사라졌을가?
 매머드와 스밀로돈은 왜 멸종했을까?
 어린 드리아스기는 왜 생겼을까?

이 모두를 한가지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은 
바로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고 한다.

운석충돌.

 부정론자
"아놔, 뭡니콰? SF 공상물도 아니고..
공룡 죽였으면 됐지, 신생대까지 운석 타령임?"

하지만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구동성
이것 때문이라니 어쩔 수 없다.

이론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들도 많다.

1980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자성을 지닌 금속공이 발견되는데,

이는 지구상에서는 찾기 힘든, 운석의 파편으로
연대를 파악해보면 정확히 만 3천년 전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성을 띤 물질은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서부,
캐나다 내륙에서 멕시코부근까지 어디서나 쉽게 발굴되고 있다.

모두 만 3천년전 경 운석 파편의 흔적들이었다.
위의 ①~③의 사건이 발생할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여기에 탄소알갱이 측정, 플로렌 흔적 등도
과학적인 증거를 뒤받침 해준다.

그렇다면 운석은 어디에 떨어졌다는 말인가?

 부정론자
"왜 충돌의 흔적이 없어?
크레이터가 있어야지!"

이런 질문에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운석 충돌 지점이 땅이었다면 
크레이터는 남아있었겠지만

빙하와 충돌을 했다면 
크레이터는 남아있지 못한다.

얼음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운석 충돌의 과정은 이러했다.

운석이 충돌하자, 
순식간에 북아메리카 대륙은 
충돌의 여파로 불길에 휩싸였다.

충돌의 충격으로 수많은 동물이 죽었을 것이다. 

뒤이어 일어난 산불은 들판을 삼켜버렸다.
동물들의 둥지와 먹잇감을 없애버렸다.

그런가하면 운석 충돌로 
빙하의 돌출부 중 하나를 녹였고,

멕시코만으로 흘러들어가던 물이 
북대서양으로 흐르며 
바다는 곧 에너지 분배 기능을 잃게된다.

그 결과 북아메리카의기온은 뚝 떨어지고
빙하는 다시 확장되고, 모래폭풍이 날렸다.

때문에 대형 포유동물이 사라지고
어린 드리아스기가 생겨나고,
클로비스 인디언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 아시아에서 건너온 인디언

그리고 만천년 전 어린 드리아스기가 끝나고
지구는 다시 따뜻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류가 북미 땅에 발을 내딛게 된다.

이들의 고향은 시베리아였다.

드디어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아시아계통의 인디언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두번째 인디언 집단을 
흔히 '폴섬 인디언'이라고 한다.

폴섬 인디언들은 
집을 짓고 살았고, 보다 정착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들의 집은 사시나무를 이용해서 
집의 뼈대를 만들고,
뼈대 위에는 진흙을 발라서 추위를 막았다.

폴섬 유적지에서 발견된 진흙조각이 그 단서다.

한편 혹독한 겨울에도 
이들은 주로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는 산꼭대기가 계곡 아랫쪽보다는
햇빛을 더 자주 쬘 수 있어, 
오히려 따뜻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높은 곳을 선호한 진짜 이유는 
전망이 좋아 먹잇감이 잘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폴섬 인디언들은 얼마 남지 않은 
거대 포유류등을 사냥했는데..

어린 드리아스기 동안 
대형 포유류는 대부분 멸종하였기 때문에

북미 대륙에 살아남은 대형포유류는 
오직 하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들소였다.

그리고 폴섬 인디언들은 
마침내 북아메리카 정착에 성공하는 원시 인디언이 된다.

이후 수천년에 걸쳐 폴섬 인디언들은 인구를 늘리고
사냥, 채집에서 농업으로의 진화를 이루게 된다.

마야 문명을 꽃피우고
아즈텍, 잉카문명을 세웠던 것도 이들의 후손이었고

15세기 후반 콜럼버스를 맞이한 것도 
모두 이들의 후손이었다.


원제 : Journey To 10,000 BC (History Channel, 미국)

댓글 없음:

댓글 쓰기